[기고] 혁신의 '싹' 틔우는 농식품 크라우드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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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철 농업정책보험금융원 투자운용본부장한 줌의 쌀을 손에 쥐기까지 농업인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특히 충분한 물을 주고 씨앗을 틔워내는 발아 과정이 없다면 이후의 일은 모두 무의미한 과정이 돼버린다. 기업을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좋은 아이디어와 경쟁력을 지닌 기업이 초기 정착 과정에서 용감한 도전을 하고 혁신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과감하고 건전한 투자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농식품 분야에선 크라우드펀딩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대중으로부터 소액을 투자받아 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의 자금 숨통을 틔워주고 초기 성장에 자양분이 된다.크라우드펀딩은 최근엔 단순히 기업의 투자 유치 수단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 농식품 기술력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 신제품의 흥행 여부를 따져보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저마다 내세운 독특한 아이디어와 차별화된 제품이 실제로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농금원)은 농식품 기업의 크라우드펀딩을 지원하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오마이컴퍼니, 크라우디) 내에 농식품전용관을 운영하고 있다. 참여 기업에 대한 현장 코칭, 컨설팅 비용 및 펀딩 수수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농금원이 지원하는 크라우드펀딩에는 지난해 370개 농식품 기업이 참여해 40억8200만원을 투자받았다. 2016년 17건, 8억900만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6년 만에 규모가 다섯 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도 지난 10월 기준 291건, 27억원을 달성했다.하지만 ‘푸드테크’ ‘그린바이오’ 등 농식품 신산업 분야가 혁신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민간 금융의 참여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농업은 자연재해 등 통제 불가능한 요인이 존재하고, 다른 산업 대비 긴 회임기간으로 투자 수익의 불확실성이 높다. 정부의 농업정책금융이나 농금원이 운용하고 있는 농림수산식품모태펀드 등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농산업 전체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리고 혁신적·창의적 기업에 대한 모험적 투자가 이뤄지려면 민간 금융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크라우드펀딩으로 기초 체력을 키운 기업들이 해외에서 힘찬 날갯짓으로 각자 새 항로를 열어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지난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열린 호주 최대 식품박람회 ‘파인 푸드 오스트레일리아’ 참관 당시 농식품 크라우드펀딩 경험이 있는 국내 기업 세 곳에 호주 유통기업, 수입 전문기업 등의 관심이 유독 크게 쏠린 것을 목격했다. 글루텐프리 베이커리 제품을 생산하는 달롤컴퍼니, 과채·유아음료 등에 특화된 농업회사법인 프레쉬벨, 순식물성(비건) 디저트 전문기업 조인앤조인 등 참가 기업은 박람회 기간 동안 총 33건, 335만달러의 바이어 미팅을 진행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기업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농식품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더욱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