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오페라 '아말과 동방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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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경재의 사운드 오브 오페라갈수록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는 세월에 몸을 맡기다 보면, 가끔씩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지내는 일이 생기게 된다. 12월 크리스마스가 주는 겸손의 가치 같은 것 말이다.
어린 시절 제과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캐롤곡 중에 '동방박사 세 사람'이란 곡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가는 세 명의 왕으로 알려진 동박박사들은 이란 북동부 지역의 점성술사들로 추측되는 사람들이다.문헌에 따르면 당시 '마기'라고 불린 이들은 12명으로 구성됐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들이 아기 예수에게 전하려던 성경 상의 선물이 3개(황금, 유향, 몰약)였기 때문인지 3명으로 전승됐고, 더러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대표하는 왕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후대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카스파르, 발타자르, 멜키오르로 부르기 시작했다.그런데 이들은 왜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를 만나러 가게 되었을까? 별을 관측하던 점성술사들은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 아기를 경배하기 위해 당시 유대의 왕, 헤롯이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다. 헤롯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유대의 왕이 태어난 곳을 알아본 바,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동방의 박사들을 보내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들이 드리는 세 가지 예물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황금은 왕의 권위를, 유향은 제사 지낼 때 향료로 쓰이는 신성함을, 그리고 방부제로 쓰이는 몰약은 세상의 구원자가 될 사람으로서 장차 받을 고난을 의미한다. 별이 가리키는 곳을 찾아간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에게 그 예물들을 바쳤다. 왕권의 위협을 느낀 헤롯에겐 아기가 있는 곳을 알리지 않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고 한다.이 동방박사를 소재로 이탈리아 출신 미국 작곡가인 잔 카를로 메노티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담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오페라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작곡가 자신이 이탈리아에 살던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는 미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선물을 주느라 바빠서 이탈리아에서는 만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속 산타클로스로 떠올린 사람이 바로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가는 동방박사들이었다. 아기에게 황금, 유향, 몰약의 선물을 들고 찾아가는 모습이 작곡가 메노티에게 성탄절의 산타클로스의 모습이었고, 어린 시절의 소중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페라 '아말과 동방박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이 오페라는 미국 NBC방송국에서 TV로 방송할 오페라로 제작됐다. 이 작품은 미국 최초로 TV로 생중계되는 작품이었다. 메노티는 오페라는 모름지기 무대에서 실연돼야 하기 때문에 한번 방송하고 마는 것에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데, 이 작품은 방영되던 날, 500만 미국인이 동시에 관람했다. 오페라 한편 당 최대 관객수였다.이야기의 내용은 간단하다. 2023년전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아말’이라는 소년과 어머니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 아말은 다리가 불편한 친구이지만 마음씨가 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해 항상 즐겁게 피리를 불며 지낸다. 어머니는 그런 아말이 철없어 보이기만 하고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다.
그런 가족에게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하고 보물을 바치려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 즉 세 명의 왕들이다. 긴 여행 중 잠시 쉴 곳을 찾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들을 맞아들인 아말과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왕들에게 문안을 하고, 조촐한 선물과 춤으로 건네는 등 정성을 다한다.
동네 사람들이 떠나고 이제 잠을 청하며 쉬려는데, 아말의 어머니 눈에 문득 왕들이 가지고 온 황금이 들어온다. ‘저 황금을 조금만 가질 수 있다면 아들 다리도 고치고 가난도 면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그만 황금에 손을 대다가 발각되고 만다.마음씨 착한 왕은 그들이 경배하러 가는 아기는 세상을 구원할 분이니 황금은 그냥 가져도 된다고 말한다. 양보와 배려의 순간에 어머니는 뉘우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그 순간 아말의 다리가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아말은 치료의 기적을 경험하게 해 준 아기 예수에게 자신이 쓰던 목발을 선물로 바치겠다며 동방박사들을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
원래 이 오페라는 어린이 관객을 위해 만든 만큼 크게 꾸미지 않기고 단순하게 공연되기를 작곡자가 원했다고 한다. 가난속에서도 귀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높은 신분임에도 가난한 처소를 찾은 왕들의 모습, 잠시 부정한 마음을 가졌지만 바로 잘못을 뉘우치는 용기,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황금을 기꺼이 내어주는 관용이 이 작은 오페라에 아름답게 녹아있어, 마음속의 겸손함을 일으켜 준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