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주의 베낀 나치와 소련…'반쪽짜리 성공'에 그친 이유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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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포드 자동차는 20세기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과학적 관리기법과 컨베이어 벨트를 결합한 '포드주의'는 자동차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며 지구촌 전체의 생활 양식을 바꿔놨다. 미국만 놓고 보더라도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높이고 생활권을 확장해 세계 1등 공업국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스테판 J.링크 지음
오선실 옮김
너머북스
512쪽│3만원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은 미국 제조업의 성장 신화를 견인한 포드주의가 세계로 확산하는 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나치 독일의 '폭스바겐', 소련의 '가즈' 등 이념적으로 미국 반대편에 있던 나라들도 포드를 앞다퉈 모방했다.책을 쓴 스테판 링크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포드 조립라인이 있던 1930년대 디트로이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제조업이 쇠퇴한 지금은 옛 명성을 잃었지만, 당시에는 저자가 '20세기의 수도'라고 표현할 정도로 산업의 중심지였다. 유럽의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인,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형태의 생산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미국에 뒤쳐졌던 나치 독일과 소련은 '미국의 방식으로 미국을 이기자'는 처방을 내놨다. 독일 정치인 테어도어 뤼데케는 "독일이 미국의 사냥감이 되기 전에 미국의 수단과 메커니즘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소련은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며 "가장 진보한 미국의 기술로 신속하고 완전한 전환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한테 포드주의는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포드는 자신의 노하우를 기꺼이 공유했다. 모든 노동자가 조직의 일부로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작업 방식도 전체주의와 엇비슷한 지점이 있어 보였다. 나치와 소련 지도부한테 포드주의는 이데올로기와 적절히 타협하면서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셈이다.나치는 폭스바겐을 세우고 '인민의 차'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미국 기업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면서도 자본 통제를 활용하는 양면 전술을 펼쳤다. 이들 기업이 독일에서 남긴 이익을 본국으로 송환하지 못하게 하면서 수익을 독일 공장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렇게 독일은 1936년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3위의 자동차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문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처럼 방대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대량 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없었다.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었다.
소련에서도 포드주의 토착화는 순탄치 않았다. 저자는 독일에 비해 극단적으로 외국 기업을 배제한 지도부의 결정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소련은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보단, 외국의 선진 시설을 사들여 직접 운영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자 자원을 국가가 할당하는 계획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불거졌다. 경쟁이 없으니 혁신이 있을 리 있나. 저자는 "강철과 기계 설비, 원자재 공급이 지연된다는 임원진의 한탄이 회계 보고서를 가득 채웠다"고 말한다. 결국 나치와 소련의 포드주의가 '반쪽짜리 성공'에 그쳤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포드주의의 컨베이어 벨트식 생산에만 주목하고, 그 안에 내재한 자유시장 원리를 등한시한 탓이다. 나치는 수출 기반 성장에서 멀어지며 몰락을 자초했고, 소련은 계획경제의 한계에 직면했다.
포드주의의 세계화 사례는 후기 개발 국가들이 참고할 만한 교훈을 준다. 저자는 "성장은 언제나 국가 간 관계에서 나온다"며 "세계 경제구조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지 한 국가의 틀 안에서 이해한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