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폭탄' 맞은 개도국들…빚 갚는데 年 600조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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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국제 부채 보고서'지난해 개발도상국들이 빚을 갚는 데 600조원 가까운 돈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개도국의 60%가 심각한 부채 압박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국가가 ‘부채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잃어버린 10년’에 진입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환금 규모가 대출액보다 커
"잃어버린 10년 진입할 수도"
세계은행(WB)은 13일(현지시간) 발간한 ‘국제 부채 보고서’에서 개도국들이 2022년 공공 부채 상환(원리금·이자 포함)에 전년 대비 5% 증가한 4435억달러(약 575조원)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다.최빈국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WB 산하 국제개발협회(IDA)로부터 저리 융자와 보조금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는 75개국의 부채 상환액은 역대 가장 많은 889억달러(약 115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이들 국가는 이자를 갚는데 236억달러를 썼는데, 10년간 네 배로 불어난 수준이다. 저소득 국가의 약 60%는 부채 위기에 이미 놓여 있거나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는 지적이다.
개도국들의 자금 조달 사정은 악화하고 있다. 개도국들의 신규 외채 발행 규모는 지난해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개도국들의 부채 상환금은 대출금보다 1850억달러 더 많았다. 상환금 규모가 대출금을 앞지르는 역전 현상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 등 채권국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 탓에 국가 채무 재조정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WB는 24개 최빈국의 부채 상환 비용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최대 39% 불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저금리 시대 고성장을 거듭해온 개도국들은 지난해부터 주요국 금리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격하게 오르고 달러화 강세가 유지되자 막대한 빚 부담에 휩싸이게 됐다. WB에 따르면 개도국 대외 부채의 3분의 1 이상이 변동금리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더밋 길 W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개도국들이 공공 보건, 교육, 인프라, 기후 위기 대응에 쓰일 예산을 전용해 빚을 갖는 데 쓰고 있는 실정”이라며 “채무국과 채권국, 다자간 금융기관이 신속하고 조직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이 찾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