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줄 알았지"…아직 끝나지 않은 가습기살균제 공포

환경사회학 연구자가 쓴 신간 '재난에 맞서는 과학'
"좋은 줄 알았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히 마트에서 판매되는 제품이니까, 매일 가는 마트에서 판매원이 판촉 행사를 하니까,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니까 믿고 구입했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이 출시한 '가습기메이트'가 시초였다.

가습기 내부 세균을 없애고 세균번식을 억제해 물때를 방지하면서도 "인체에 무해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출시 첫해부터 10만개가 팔리며 히트상품이 됐다. 다른 회사들도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6년부터는 옥시, 애경, LG생활건강 등이 잇달아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2005년 판매량은 99만개까지 치솟았고, 2021년까지 약 1천만개가 판매됐다. 특히 옥시의 제품은 11년간 415만개나 팔렸다.
잘 나가던 가습기살균제 판매에 제동이 걸린 건 제품이 나온 지 17년이 지난 2011년부터다.

그해 4월께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폐렴 증상을 보이는 산모들이 연이어 입원했다. 환자들은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 현상, 폐가 터지는 증상 등 여러 폐 질환에 시달렸다.

의료진은 신종플루 등 바이러스 감염을 의심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병원 측은 질병관리본부에 조사를 요청했다.

역학조사, 세포독성시험, 동물 독성 실험 등 다양한 조사가 7개월 동안 진행됐다.

동물 부검 결과, 일부 가습기살균제를 흡입한 실험 쥐에서 피해자와 비슷한 폐 손상이 관찰됐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사용 중단 강력권고를 내렸다.

환경 사회학 연구자인 박진영이 쓴 '재난에 맞서는 과학'(민음사)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정조준한 책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2023년 10월 말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신고한 7천877명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만 1천835명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환경 재난이다.

도대체 이토록 위험한 제품이 어떻게 장기간에 걸쳐 팔릴 수 있었을까.
책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는 출시 전부터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내부 보고가 있었다.

가습기메이트 출시 두 달 전, 유공 생물공학 연구팀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는 "독성시험을 수행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혀 있었다.

또한 제품 출시를 "재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옥시도 제품을 출시하며 흡입독성시험을 거쳤으나 노출시간을 4시간으로 짧게 설정했다.

제품 안정성을 충분히 확인하는데 결함이 있었던 셈이다.

2006년에도 참사의 베일이 밝혀질 기회가 있었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에 급성 간질성 폐렴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 환자 15명이 입원했다.

이들 환자를 치료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2008년 전국 2차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소아청소년과를 대상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한 결과, 23곳에서 78건의 유사 사례가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참사일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2011년이 되어서야 가습기살균제의 폐해가 드러났지만, 보고부터 조사가 이뤄진 7개월 동안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은 거듭 유예됐다.

역학과 독성학 전문가의 의견이 엇갈렸고, '가장 정확한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절차는 계속해서 지연됐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심판은 현재 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저자는 참사 이후 1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원인 제공자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도 아직 종결되지 않은 재난"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환경재난과 피해를 더 떠들썩하게 말하자. 그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아울러 재난과 관계하는 과학에 대해서는 "재난 피해와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자 개인의 호기심이나 이해관계에 갇힌 과학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고통과 사회적 정의의 차원에서 시작하는 과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1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