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합 찬성일세! '비트'→'서울의 봄' 정우성·김성수 감독의 다섯 번째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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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하늘의 롱테이크감독이 스크린 위에 펼쳐질 세계를 그린다면, 배우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서로에게 불가분의 관계인 감독과 배우는 각자의 방식으로 프레임을 채워낸다. 같은 감독의 작품에 여러 차례 출연하는,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 구현해내려는 작품 세계와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는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은데,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배우라는 의미'의 페르소나는 그것을 충족시킨 사람이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 '서울의 봄'
-정우성과 김성수 감독의 협업
고(故) 장 뤽 고다르 감독과 안나 카리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니로,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故 키키 키린,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의 관계가 그러하다. 이 리스트에 하나를 더 보태야겠다.영화 '서울의 봄'(2023)의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이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해 누적관객수 755만명(12월 14일 기준)을 불러모은 '서울의 봄'은 위기의 한국 영화 속에서 거침없이 질주 중이다. 1997년 영화 '비트'를 시작으로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 '아수라'(2023), '서울의 봄'에 이르기까지. 벌써 다섯 번이나 작업을 함께 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의 특성과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유독 김 감독의 영화에서 정우성의 얼굴은 다채롭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텅 비어버려 공허하거나('비트'), 몸부림을 쳐도 다가갈 수 없는 이상에 이상한 집념이 새겨지거나('태양은 없다'), 따로 미사여구 없이 신체적 언어로 신념을 드러내거나('무사'), 발을 내딛는 곳마다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 씩씩 화를 토해내면서 일그러지거나('아수라'), 혼돈의 상황을 뒤집기 위한 절박한 얼굴('서울의 봄')이 그러하다.
작품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다르다는 전제를 알고 보더라도 정우성의 얼굴은 쉬이 인상에서 지워낼 수 없다. "이정재가 '헌트'에서 '내가 제일 정우성 멋있게 찍고 싶다고 말했지만, 김성수 감독님이 정우성을 멋지게 찍는구나 싶었다'고 하더라"라는 정우성의 말처럼, 김 감독은 피사체로서의 정우성 활용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가려진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정우성만의 아련함, 영화 '비트'(1997)"나에겐 꿈이 없었다. 19살이 되었지만 내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매일 밤 태수와 어울려다니면서 근처 패거리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때는 그게 전부였다"
껄렁껄렁한 몸짓과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으로 가린 한쪽 눈, 오토바이에서 두 손을 떼고 도로를 내달리는 무모함. 이것이 흔들리는 소년, 민(정우성)을 설명하는 단어였다. '비트'를 통해 정우성과 처음 만난 김 감독은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다. 조각 같은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방황하는 소년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1993년' 영화 '비명도시'로 데뷔한 김 감독에게도 영광을 안겨줬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었다.어둠의 세계에 몸담은 친구 태수(유오성), 불안함으로 가득 찬 연인 로미(고소영), 평범함 안에 녹아들고픈 친구 환규(임창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보단 상대의 목적에 의해 움직인다. 평범하게 살아보려던 민의 다짐과는 달리 자꾸만 악의 늪으로 빠져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속도감을 높여 질주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민은 찰나의 해방감을 느끼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처럼 자신을 온전히 소멸시키고야 마는 민은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죽어간다. 조직에 배반당해 죽임을 당한 태수를 오토바이에 싣고 가던 민이 방향을 돌려 그의 복수를 행하기 때문이다. 꿈이 없던 민은 이렇게 되뇌인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 하지만 로미야. 지금 이 순간 그리운 것들이 너무 많아"라고. 손을 벌리고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프리즈 프레임으로 보여준 '비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정우성과 김 감독은 잊히지 않는 청춘의 단상을 새겨넣었다.
미친 듯이 달려 도달한 그곳에는, 영화 '태양은 없다'(1999)영화 '태양은 없다'는 아이러니하게도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도철(정우성)과 홍기(이정재)의 모습이 엔딩이며, 전작 '비트'와 마찬가지로 프리즈 프레임 된다. '비트'의 민이 자신을 잡아줄 누군가가 없어 한없이 추락했다면, '태양은 없다'는 그 반대다.
권투 선수였던 도철은 후배에게 처참하게 패한 후, 가망 없는 운동 대신 돈을 벌기 위해 흥신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또래 홍기는 뺀질뺀질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며, 속사포처럼 말을 토해내면서도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그런 속물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도철과 홍기가 동행하면서 진창 같은 삶에서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도철은 배우 지망생 미미(한고은)의 마음을 얻고 권투 선수로 재기하기 위해, 홍기는 사채업자 병국(이범수)에게 쫓기지만 6년 안에 높은 빌딩을 매수하겠다는 벅찬 꿈을 꾸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상황을 회복할 수 없는 두 사람은 다른 형태의 막다른 길에 놓인다.
복싱장에 들어가서 시합하기만 하면 그놈의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도철과 빌린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생명까지 위협에 처한 홍기. 개인적인 상황과 더불어 홍기는 도철의 돈을 떼내거나 훔쳐서 도망치는 얍삽함을 보이고, 도철은 추격한다. 동전의 앞과 뒤가 뒤집히듯이, 도철과 홍기의 관계는 고정되지 못하고 자꾸만 변화한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 감독과 두 번째 만난 정우성은 '비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마구 달리고 또 미친 듯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김 감독은 얼굴뿐만 아니라 정우성의 기다란 기럭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인가? '실체' 없는 이상을 좇는 움직임을 정우성에게 부여하면서, 현실이란 혹독한 무게를 담아낸다.
'태양은 없다'는 지금의 '청담부부'라고 불리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처음 만난 작품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를 돌아보면 그 유명한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언덕을 걸어오는 정우성과 이정재의 모습과 'Love Potion No.9', 'Let's Twist Again', 엄정화의 '포이즌, 'DOC와 춤을', 'Wooly Bully' 등 멋진 OST도 한몫했다.
말이 아닌 액션으로 대답을 대신하다, 영화 '무사'(2001)중국 올 로케이션 촬영과 촘촘하게 설계된 액션으로 유명한 '무사'에서 정우성은 과묵하다. 아니 과묵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말이 없는 수준이다. 러닝타임 10여분이 지나도록 단독 컷 하나 없고, 40분 가량이 지나서야 "주인님께서 묻힌 곳을 보러 갈 겁니다. 난 자유인이오"라고 말할 정도니까. "말을 하네. 말하는구먼"이라는 상대의 대사가 웃음 포인트가 됐을 정도니까.
고려 우왕 1년(1375년), 고려와 명의 관계는 공민왕 시해사건과 명나라 사신 살해사건으로 악화됐었다. 그런 상황에서 명나라로 간 고려 사신들과 무사들이 오해받아 귀양길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게 '무사'의 주된 내용이다. 김 감독은 '비트', '태양은 없다'와 달리 이번엔 정우성이 비워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노비 출신이던 호위무사 여솔(정우성)은 주인인 부사 이지헌(송재호)이 죽음을 맞이하자, 자유인 신분이 되지만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끝까지 보필한다. 여솔에게는 한 가지 목적이 생긴다. 용호군의 장수 최정(주진모)이 몽고군으로부터 납치된 명나라의 부용공주(장쯔이)를 구해내면서 말이다.
기다랗게 늘어뜨린 장발 머리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피부, 자신의 키보다 큰 창칼을 들고 다니는 여솔(삼국지의 관우를 연상시킨다)은 주인을 지키는 것 외에는 목적 자체가 부재했으나 부용공주를 우연히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갖는다. 창칼을 휘두르는 움직임, 또렷하게 상대를 응시하는 눈동자로 말을 대신하는 여솔은 묵직한 인물이다.
개봉 당시 고려 무사들이 부용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건 비현실적이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광활한 사막 장면과 몽고군과 대립하며 창과 칼을 나누는 장면은 지금 봐도 놀랍다. '무사'를 통해 정우성은 최소화된 대사와 절제된 움직임으로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장했다.
지옥처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치다, 영화 '아수라'(2016)김 감독과 정우성은 2001년 '무사' 이후 15년 만에 '아수라'로 재결합했다. 확 지나버린 시간만큼이나 길을 잃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20대 청춘의 탄성이 아닌 회복력이 없는 중년의 관성이 '아수라'에 담겨있다. "하, 인간들이 싫어요"라는 비리경찰 한도경(정우성)의 목소리에는 그런 귀찮음이 묻어있다. "불안하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라던 '비트'의 민, "홍기야. 내가 진짜로 이길 수 있었다. 할 수 있었다"라던 '태양은 없다'의 도철, "공주라고 해서 누구한테나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던 '무사'의 여솔 대신 피곤함에 찌든 한 남자의 투박한 말 뿐이다.
안남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뒤를 봐주다가 우연하게 선배 형사(윤제문)을 죽이게 된 한도경은 경기지검 검사 김차인(곽도원)에게 협박을 받는다.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했던 이민섭을 살인 교사하려던 박성배의 음성녹음을 가져오면, 위기에서 모면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한도경에게 이 상황은 사면초가다. 김차인에게 녹음 파일을 가져주자니 배신이요. 박성배와의 의리를 지키자니 교도소에 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한도경은 이 상황이 버겁다. 아내는 오랜 시간 병원 신세고, 아끼던 경찰후배 문선모(주지훈)는 자신이 박성배에게 추천했으니, 한도경을 구원해줄 이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
'아수라'에서 정우성의 얼굴은 늘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검사 측에 얻어맞고, 박성배의 수하들에게 밟힌다. 상처를 치유할 시간조차 없으며, 11월 20일까지 결판을 지어야만 한다. "나 좀 내버려 둬. 니들끼리 싸워"라며 보이지 않던 판을 전면으로 드러내니, 제목처럼 아수라가 된다. 김 감독은 정우성에게 분노가 응축돼 해소되지 못해 답답한 감정을 끅끅대야 한다는 일종의 지령을 내린 듯하다.
영화 내내 정우성은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경직돼 있고, 마음 편히 자는 모습 한 컷 나오지 않는다. 안락함을 가져다주는 '집'이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 '아수라'는 정우성에게 한숨을 돌릴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아수라'의 정우성 연기는 숨 막힐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해, 정우성은 '아수라'를 통해 제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고요하지만 뚝심 있게 나아가다, 영화 '서울의 봄'(2023)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서울의 봄'은 김 감독과 정우성의 다섯 번째 협업일 뿐만 아니라, '아수라'의 황정민과도 재회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회탈 같은 미소와 '감히 네가'라는 깔보는 눈빛으로 섬뜩함을 안겨줬던 '아수라'의 황정민은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 역으로 나왔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끝장 보기를 선택했던 '아수라'의 정우성은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역으로 출연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한 '서울의 봄'은 한국 현대사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기록을 스크린 위에 재현하고 있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 현대사의 운명적인 전환점이 되어있는지를 다루는 것이 화두였다"라는 김 감독의 말처럼 9시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선택들은 포개지고 뒤집히기를 반복한다.
단연코 '서울의 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황정민이 틀림없다. 민머리 분장에 악 그 자체인 것만 같은 모습으로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이태신 역의 정우성은 '서울의 봄'을 통해 부드럽지만 굳건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 감독은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에게 어려운 임무를 맡겼건만, 정우성은 침착하게 수행해냈다. 힘 조절을 통해 서사의 균형을 팽팽하게 맞췄다. 행주대교로 밀려 들어오는 군대 앞에 맨몸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장면을 보고는, 왜 김 감독이 정우성을 페르소나로 여기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저 걸어가는 장면일 뿐인데,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단함과 인간으로서의 불안감, 리더로서 지닌 무게감을 다 담아냈다.김 감독과 정우성은 그간의 호흡으로 '서울의 봄'을 만들어냈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 '서울의 봄'에 이르기까지.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협업은 이유 있는 만남이었다. 서로에게서 새로움을 발굴하고, 가장 이해해주었기에 다섯 번의 작업이 있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