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아버지 알랭 부블리 "韓배우 연기력 깜짝 놀라"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 카메론 매킨토시의 손에서 태어난 최고 역작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뮤지컬의 원작자는 따로 있다. 프랑스 출신의 알랭 부블리(극본·작사)와 클로드 미셸 숀버그(작곡) 손에서 뮤지컬이 처음 탄생했다. 이들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공연을 만들어 파리에서 처음 무대를 올렸고, 몇년 후 이를 알게 된 매킨토시가 손을 내밀어 지금의 메가히트 뮤지컬이 됐다. 지난 15일 '레미제라블' 국내 공연 10주년을 맞아 내한한 부블리를 서울 필동에서 만났다.

○'파리 코제트'와 결혼한 레미제라블의 아버지부블리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1978년 영국 런던에서 뮤지컬 '올리버!'를 보는 중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각색한 뮤지컬이다.

"공연을 보면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어떻게 무대화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프랑스 혁명'이란 작품을 함께 만든 적이 있는 숀버그와 작품을 준비해 1980년 파리의 한 경기장에서 무대를 올렸어요. 3개월간 공연한 뒤 반응이 꽤 괜찮았지만 별다른 재연 계획은 없었죠."
폐막 후 3년 뒤, 영국의 낯선 제작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킨토시였다. 우연히 프랑스 공연의 음반을 듣고 매료된 그는 부블리와 숀버그에게 "인생작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왔다. 매킨토시는 당시 '캣츠'로 이미 성공한 제작자였지만 프랑스에 살던 부블리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매킨토시가 '올리버!'를 제작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웨스트엔드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부블리와 숀버그는 런던으로 건너가 대본과 넘버를 직접 손봤다. 프랑스 관객과 달리 빅토르 위고의 원작에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다른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의 시작 부분을 고쳤다.

"프랑스 초연 버전은 장발장이 공장의 사장으로 성공한 뒤부터 이야기가 출발해 공장 노동자들이 부르는 넘버 '앳 디 엔드 오브 더 데이(At the End of the Day)'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수정한 버전에선 처음 15분 동안 장발장이 감옥에서 노역을 하고 가석방 중 탈출하는 장면, 신부로부터 은촛대를 훔치고 용서받는 장면 등이 나옵니다. 글로벌 관객들을 위해 좀 더 친절하게 수정했죠."

그밖에 극중 에포닌의 대표 넘버 중 하나인 '온 마이 오운(On My Own)'은 원래 미혼모 '판틴'의 넘버였지만 짝사랑을 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에포닌'의 것으로 바뀌었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대표 넘버 '브링 힘 홈(Bring Him Home)'과 '스타스(Stars)'도 웨스트엔드 공연에서 새로 추가된 곡들이다.
부블리는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에포닌을 꼽았다. 파리의 빈민가에 사는 에포닌은 혁명을 주도하는 '마리우스'를 짝사랑하지만,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위해 두 사람의 오작교 역할을 해주는 가련한 캐릭터다. 부블리는 "불가능한 사랑을 하는 독특한 캐릭터라 대본을 쓰면서 가장 마음이 갔던 캐릭터"라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내가 '파리 코제트'(파리 프로덕션에서 코제트를 연기한 배우 마리 자모라)와 결혼했기 때문에 코제트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된다"며 웃었다.

그는 혁명가들이 바리케이트 뒤에서 부르는 '드링크 위드 미(Drink with Me)'의 가사를 쓸 때는 눈물을 글썽였다고 했다. 이제는 지나간 행복했던 날들을 상상하며 부르는 노래다. 또 다른 대표 넘버 중 하나인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의 프랑스어 원 제목은 '나는 다른 삶을 꿈꿨다'인데, 원작 소설의 한 챕터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 챕터 제목을 보자마자 그대로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레미제라블' 전체 넘버에서 가장 처음으로 작업한 곡이죠. 원작에서 5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묘사된 판틴의 삶을 3분짜리 노래에 다 담았습니다."○"훌륭한 원작을 충실히 무대화했을 뿐"

부블리는 최근 한국어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커튼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깜짝 인사'도 했다. 공연을 보고 국내 배우들의 역량과 한국어의 운율에 감탄했다고 한다.
"오디션 때 배우들의 목소리는 들어봤지만 실제 공연을 보고 훌륭한 연기에 감동 받았습니다. 평소 한국어를 들으면 언어 자체에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노래를 하듯 음정에 단어를 싣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언어적 특성이 작품이 더 아름다워지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지 40년 넘은 뮤지컬이 아직까지 전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를 묻자 "원작의 힘"이라고 답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은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고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인간 군상을 소설에 잘 담아냈죠. 처음 공연을 올릴 때부터 '원작에 충실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몫은 잘 쓴 소설을 무대언어와 음악으로 풀어낸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