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부터 물랭루주까지…서울서 펼쳐지는 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16일 개막하는 '미셸 들라크루아'展

1930년대 낭만적 파리 모습 담은 그림 200점 전시
90세 노화백 "그림은 평생의 친구"
프랑스어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란 뜻의 '벨 에포크'. 통상 문화·예술이 꽃 피웠던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사이의 파리를 이렇게 부르지만, 프랑스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90)에게 '벨 에포크'는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의 파리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자신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시기여서다.

그래서 그는 지난 50여 년간 자신만의 '벨 에포크'를 화폭에 담았다.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 등 파리의 랜드마크부터 어릴 적 눈 속에서 강아지와 뛰놀던 기억, 그리고 엄마와 나비를 잡았던 추억까지. 아이가 그린 것처럼 소박한 '나이브 아트' 기법으로 1930~1940년대 파리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따뜻함' 그 자체다. 세계 곳곳에서 300번 넘게 개인전이 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행복을 그리는 화가' 들라크루아의 작품들이 한국에 상륙했다.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시를 통해서다. 한국경제신문과 2448아트스페이스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선 그가 2008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그림 200여 점이 걸린다.

◆8개 정거장에서 펼쳐지는 파리 여행

전시는 마치 파리를 실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각 공간마다 '정거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총 8개의 정거장을 통해 파리의 명소와 들라크루아의 생애를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첫 번째 정거장은 '미드나잇 인 파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1930년대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처럼 옛 파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입구에서 들리는 마차 소리도 시간여행 느낌을 주는데 힘을 보탠다. 최고 사교장이었던 '물랭루주'부터 에펠탑까지 파리의 대표 명소들을 들라크루아의 화풍으로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정거장은 파리지앵들의 일상을 담았다. 노천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다정하게 걷는 커플들…. 들라크루아는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낭만적인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그림은 꼭 제목과 함께 봐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비 내리는 날 택시를 발견한 사람을 그린 작품 제목은 '살았다!'다. 세찬 비바람이 부는 풍경이 담긴 그림에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특유의 화사한 색채와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은 풍경화, 그 이상이다. 그는 "내 그림은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새긴 사진이 아니다"라며 "모네 같은 인상파처럼 파리에 대한 인상을 내 방식으로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작가가 어린 시절 느꼈을 설레임과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파리에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추억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로망을 선사한다.

◆함박눈 속에서 즐기는 파리 크리스마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정거장에 들어서면, 전시장은 한순간에 겨울날 파리 도심으로 변한다. 함박눈이 쏟아지고, 강아지와 뛰어노는 어린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파리의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더 실감나게 감상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젝션 매핑(표면에 빛을 투사하는 기법)'이 힘을 발휘한다.

눈으로 하얗게 뒤덮힌 파리의 명소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사람처럼 연말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다른 전시장에선 작품 보호와 쾌적한 관람을 위해 사진 촬영을 금지하지만, 4~5번 정거장에선 기념사진을 찍어도 된다.
파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꿈의 마을' 이보르의 풍경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들라크루아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친척이 살고 있던 이보르로 놀러가곤 했다. 여섯 번째 정거장 '길 위에서'는 파리에서 이보르로 향하는 숲길의 노을진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냈고, 일곱 번째 정거장 '우리의 사적인 순간들'에선 이보르에서 스키를 타고, 나비를 잡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그렸다.
올해 만 90세가 된 그는 여전히 붓을 놓지 않고 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정거장은 그가 올해 그린 신작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지금도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데 쏟는다. 최근엔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집 뒷마당에 새로운 스튜디오까지 지었다. 열정이 식지않은 노(老)화백의 전시는 그가 남긴 말로 끝을 맺는다.

"저는 긴 삶의 끝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 저도 많은 사람들처럼 큰 만족, 몇몇 기쁨,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론 짊어지기 무거운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림만큼은 언제나 저를 놓지 않았어요. 그림은 제게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2000원.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