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임대인 명단공개, 뚜껑 열어보니 빈깡통?…10여명 그칠듯

HUG 관리 '블랙리스트'만 378명·떼먹은 보증금 2조원인데…
명단공개법 시행 이후 전세사고 낸 집주인만 대상
정부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은 '악성 임대인' 명단을 올해 말부터 공개하기로 한 가운데 벌써부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중 관리하는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 370여명 중 명단 공개 대상에 오른 임대인은 5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명단 공개를 전세사기 방지책으로 앞세웠으나, 세입자들이 악성 임대인을 거를만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17일 HUG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HUG는 오는 28일께 처음으로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9월 말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의 법적 근거를 담은 개정 민간임대주택특별법과 주택도시기금법이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명단 공개 대상은 HUG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대신 돌려주고서 청구한 구상 채무가 최근 3년 이내 2건 이상이고, 액수가 2억원 이상인 임대인이다.

전세금을 제때 내어주지 못해 임대사업자 등록이 말소된 지 6개월 이상이 지났는데도 1억원 이상의 미반환 전세금이 남아있는 임대인도 명단 공개 대상이다. 이들 악성 임대인의 이름, 나이, 주소와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전세금 액수, 기간 등이 HUG·국토부 홈페이지와 안심전세 앱(app)에 공개된다.

법 시행 직후 바로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고의가 아닌 경제난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명 기간(2개월)을 두기 때문이다.

HUG 임직원 3명, 변호사 등 전문가 3명, 교수 5명으로 이뤄진 임대인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소명 자료를 검토한 뒤 명단을 공개할 악성 임대인을 결정한다.
문제는 법 시행(올해 9월 29일) 이후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1건 이상 있고, 미반환 전세금 규모 역시 법 시행 이후 2억원 이상이 돼야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요건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19일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하는 명단 공개 대상 임대인은 총 17명이다.

이들에 대한 소명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달 중 실제 명단 공개가 이뤄지는 임대인 수는 17명보다 더 적을 수 있다.

HUG는 "법의 소급 적용은 어렵기 때문에 시행일 이후 (전세보증금 미반환으로 인한) 채무가 발생한 임대인부터 명단 공개가 가능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명단 공개 인원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HUG가 만드는 일종의 '블랙리스트'인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는 지금까지 2조원이 넘는 전세금을 떼어먹었지만, 명단 공개 요건에 따라 이 중 5명만이 이번 공개 대상에 올랐다.

집중관리 다주택채무자는 올해 9월 말 378명으로, 작년 말(233명)보다 62% 증가했다.

이들이 낸 보증사고는 2조830억원 규모이며, 1만304세대가 피해를 봤다.

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반환한 전세금(대위변제액)만 1조8천205억원(9천7세대)이다.

특히 미반환 전세보증금 액수가 많은 상위 10명에 대해선 HUG가 지금까지 5천억원 넘는 대위변제를 했으나, 공개 대상자 중에 이들의 이름은 없다.

HUG는 상위 10명 중 2명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8명에 대해선 수사의뢰했다.

HUG는 전세금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집주인 중 연락이 끊기거나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 미회수 채권이 2억원 이상인 사람을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로 올린다. 맹성규 의원은 "HUG가 이미 악성 임대인 명단을 관리하고 있음에도, 법 시행 이후 전세 보증사고를 낸 임대인만 명단 공개 대상이 된다는 허점이 드러났다"며 "이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법 개정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