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도 안 들키면 실력일까...드라마 '안나' 원작이 건넨 화두

[arte] 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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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에디터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서로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견합니다. 각자 담당 분야가 달랐기에 추천의 관점도 특이하고 참신한 편입니다. 정한아 작가의 <친밀한 이방인>도 몇 해 전 추천을 받고 구매해두었다가 올해 봄, 긴 여행 끝에 웬만해서는 책을 읽기 어려운 귀국비행기에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밤으로 오는 캄캄한 기내에서 독서 등을 끄고, 다 읽은 책을 덮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거짓말쟁이, 사기꾼인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어쩔 수 없는’ 거짓말과 ‘어쩌다 보니’ 사기꾼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사정을 공감하다 못해, ‘그럴 수도 있지’,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이라며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나를 되돌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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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어느 날 신문광고를 통해 자기 작품이 명의도용당한 사실을 알게 된 어느 작가가, 자기 작품의 작가 행세를 한 ‘이유상’이란 사람을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명의도용’과 ‘작가’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보입니다. 이유상은 <난파선>이란 작품의 작가행세를 했는데, 이런 명의도용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 작가의 개인사 또한 마치 ‘난파선’과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기에 이유상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작가라는 직업때문에, ‘이유미’로 태어나고 자란 여자가 파란만장한 가짜 인생을 살다 못해, ‘이안나’라는 다른 여자의 인생으로 살았다가 결국 ‘이유상’이란 남자가 되어 홀연히 사라진 이야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겠지요.

이유미는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어도 딸 하나 대학은 보낼 수 있는 집의 딸로 공부도 그럭저럭 잘 했지만 고3 때 불미스런 사고로 강제전학을 당합니다. 수능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을 억울함으로 괴로워하다가 대학진학에 실패하자, 유미는 그저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학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등록금을 받아 재수학원 비용으로 씁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거짓말의 유통기한은 고작 1년, 자신이 대학에 합격하면 ‘진실’이 될 시한부 거짓말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죠. 하지만 유미의 행보는 조금씩 과감해집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다보니 ‘진짜’ 가짜대학생이 되어버렸고, 가짜대학생 행세를 하다 보니 진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집니다. 결국 가짜라는 진실이 드러나 크게 망신을 당하지만, 그녀 앞에 나타나는 새로운 거짓의 기회를 놓치지 않죠.

점점 더 과감해진 유미는 아예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신분을 세탁해 교수 ‘이안나’가 되고, 사기결혼도 했다가 부유한 노인의 젊은 애인도 되었다가, 결국 이유상이란 ‘남자’로 변해 또 다른 결혼까지 하고는 실종됩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주목받기보다, 드라마 '안나'로 만들어진 후 역주행을 한 듯 보입니다. 책과 드라마는 관점이 좀 다른데요. 드라마의 매회 시작되는 인트로에는 유미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요’라고. 드라마 속 이유미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고, 그 욕망을 좇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해도 되는 운을 타고난 사람인 듯 살아가죠.공교롭게도 입만 열면 거짓말에 명의도용과 신분세탁, 사기결혼을 척척 성공시키는 이유미의 성실함에 비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악인입니다. 미성년자와 연애를 하다 걸리자 유미에게 꽃뱀 프레임을 씌운 음악교사, 노력한 것 없이 금수저로 태어나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던 진짜 안나, 벤처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열등감으로 가득차서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갑질을 일삼는 전남편 등등. 유미의 입장에서 보면, 착하게 살아볼까 싶어도 도무지 그런 인간들 틈에서는 동기부여가 안 될 것 같습니다. 악이 만연하기 때문이지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스틸 / 사진제공=쿠팡플레이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왜 진실하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은 진실하지 않은데 왜 나만은 룰을 지키고, 선을 행하고, 심지어 진실해야 하는 걸까요? 사실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면 지옥에 간다거나, 최소한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못 받는 패널티를 어른이 되어서도 믿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무엇이 두려워서라거나,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진실해야 한다는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무엇을 위해서 진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양심에 찔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이것이 그 유명하고 어려운 칸트의 정언명법,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칙에 맞게 행동하라’의 뜻입니다).

비록 우리의 많은 행위에 어떤 이유가 있고 동기가 있고, 혹은 어떤 목적이 있지만, 윤리적인 행위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을 위해 진실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삶은 자신을 불편하게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양심에 찔려 불편하고,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불안하고, 거짓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양심에 찔리는 통증에도 둔감해질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거짓말을 했을 때, 마치 백신을 맞듯 아프게 혼이 납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세 살 때 혼쭐난 경험으로, 양심에 찔리는 통증에 평생 둔감해지지 말라고 교육을 받아온 것인지 모릅니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의 유명한 대사가 회자됩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이 말처럼, 거짓말도 드러나면 나쁘고 범죄가 될 수도 있지만, 들키지 않는다면 실력이고 스펙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칸트가 살았던 세상에 비하면 지금은 영원한 선도 영원한 악도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서울의 봄 스틸컷
그럼에도 2023년 한해를 보내며 소망해봅니다. 내년에는 양심에 찔리는 것을 아프게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