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된 조세특례…내년 정부살림 92조 적자인데 세감면만 7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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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기한이 정해진 비과세·감면 등 조세특례 10개 중 7개는 일몰 연장을 통해 사실상 영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특례는 54년 간 유지되고 있고, 도입 취지가 달성됐는데 10번이나 일몰이 연장된 항목도 있었다. 특정 목적을 위해 한시 운영되는 것이 원칙인 조세특례가 죽지 않는 ‘좀비화’하면서 재정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 일몰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입조처는 내년에 운영되는 조세특례 항목 총 280개 항목의 일몰 규정 여부 및 현황을 조사했다.조세특례는 각종 비과세, 세액 감면을 뜻한다. 정부가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예산지출과 달리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비과세 또는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으로 간접적인 재정지출이란 점에서 조세지출이라고도 한다. 정부는 1998년 ‘조세특례 일몰제’를 도입해 일정 기간이 지나 정책 효과가 달성되면 특례가 종료되도록 했다.
하지만 입조처 분석 결과 무분별한 일몰 기한 연장으로 일몰제는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내년도 조세특례 항목 280개 중 일몰 기한이 아예 없는 항목이 115개로 41.1%에 달했고, 일몰 기한이 있는 항목은 165개(58.9%)였다.
일몰 기한이 있는 항목 165개 가운데 기한 연장을 통해 10년 이상 적용되고 있는 항목만 110개로 66.7%에 달했다.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는 항목은 △해저광물자원개발을 위한 과세특례 △농·어민 지원을 위한 인지세 면제 등으로 1970년 신설돼 54년째 적용 중이다.특례가 연장된 횟수로 보면 3회 이상 연장된 항목의 수만 118개로 71.5%에 달했다. 가장 많이 연장된 항목은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벤처투자조합 출자 등에 대한 소득공제로 각 10회씩 연장돼 2025년까지 적용될 예정이다.
이 중 올해 감면 규모만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용카드 공제는 좀비화된 조세특례를 상징하는 항목이다. 이 제도는 1999년 자영업자의 투명한 매출 정보를 확보해 세원을 넓히고 내수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신용·체크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고 자영업자의 세원도 투명해지는 등 당초 정책 목적은 달성된지 오래지만 정부는 지난해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일몰 기한을 2025년까지 3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미 특례가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영구적인 제도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폐지하긴 어렵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조세특례의 좀비화는 정부 재정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도 조세지출 규모는 역대 최대 규모인 77조1144억원으로 금액 기준으로 올해(69조4988억원)보다 11% 증가한다. 기재부가 예측한 내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2조원으로 올해 전망치(80조원 안팎)보다 더 크다.
재정 누수 요인이 크지만 조세지출에 대한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년 정부가 일몰 기한이 도래한 항목들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종료되는 특례는 극히 일부다. 일몰 도래한 조세특례의 종료 비율은 2021년 10.5%, 2022년은 12.2%였고, 2023년에는 8.3%에 불과했다.
지출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조세특례가 새로 도입될 때 타당성을 따져보는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평가 제도가 2015년 도입됐지만 올해까지 총 59건 중 43건의 예타가 면제됐다. 예타 면제로 이뤄진 조세지출 규모는 14조9930억원으로 전체 조세지출(16조1388억원)의 93%에 달했다. 올해 예타를 면제한 항목만 6건으로 이로 인한 내년도 세수 감소폭은 4조원에 달한다.입조처는 대안으로 최대 2회까지만 일몰기한 연장을 허용하고 그 이후엔 자동으로 특례를 없애는 ‘일몰의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입조처는 “3회 이상 연장할 필요가 있다면 일몰 후 제도를 다시 도입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라며 “일몰기한이 설정되지 않은 항목들에 대한 심층 평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국회입법조사처는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 일몰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입조처는 내년에 운영되는 조세특례 항목 총 280개 항목의 일몰 규정 여부 및 현황을 조사했다.조세특례는 각종 비과세, 세액 감면을 뜻한다. 정부가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예산지출과 달리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비과세 또는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으로 간접적인 재정지출이란 점에서 조세지출이라고도 한다. 정부는 1998년 ‘조세특례 일몰제’를 도입해 일정 기간이 지나 정책 효과가 달성되면 특례가 종료되도록 했다.
하지만 입조처 분석 결과 무분별한 일몰 기한 연장으로 일몰제는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내년도 조세특례 항목 280개 중 일몰 기한이 아예 없는 항목이 115개로 41.1%에 달했고, 일몰 기한이 있는 항목은 165개(58.9%)였다.
일몰 기한이 있는 항목 165개 가운데 기한 연장을 통해 10년 이상 적용되고 있는 항목만 110개로 66.7%에 달했다. 가장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는 항목은 △해저광물자원개발을 위한 과세특례 △농·어민 지원을 위한 인지세 면제 등으로 1970년 신설돼 54년째 적용 중이다.특례가 연장된 횟수로 보면 3회 이상 연장된 항목의 수만 118개로 71.5%에 달했다. 가장 많이 연장된 항목은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벤처투자조합 출자 등에 대한 소득공제로 각 10회씩 연장돼 2025년까지 적용될 예정이다.
이 중 올해 감면 규모만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용카드 공제는 좀비화된 조세특례를 상징하는 항목이다. 이 제도는 1999년 자영업자의 투명한 매출 정보를 확보해 세원을 넓히고 내수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신용·체크 카드 사용이 일반화되고 자영업자의 세원도 투명해지는 등 당초 정책 목적은 달성된지 오래지만 정부는 지난해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일몰 기한을 2025년까지 3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미 특례가 20년 넘게 이어지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영구적인 제도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폐지하긴 어렵다는 것이 기획재정부의 설명이다.조세특례의 좀비화는 정부 재정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내년도 조세지출 규모는 역대 최대 규모인 77조1144억원으로 금액 기준으로 올해(69조4988억원)보다 11% 증가한다. 기재부가 예측한 내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2조원으로 올해 전망치(80조원 안팎)보다 더 크다.
재정 누수 요인이 크지만 조세지출에 대한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매년 정부가 일몰 기한이 도래한 항목들을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종료되는 특례는 극히 일부다. 일몰 도래한 조세특례의 종료 비율은 2021년 10.5%, 2022년은 12.2%였고, 2023년에는 8.3%에 불과했다.
지출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조세특례가 새로 도입될 때 타당성을 따져보는 조세특례 예비타당성 평가 제도가 2015년 도입됐지만 올해까지 총 59건 중 43건의 예타가 면제됐다. 예타 면제로 이뤄진 조세지출 규모는 14조9930억원으로 전체 조세지출(16조1388억원)의 93%에 달했다. 올해 예타를 면제한 항목만 6건으로 이로 인한 내년도 세수 감소폭은 4조원에 달한다.입조처는 대안으로 최대 2회까지만 일몰기한 연장을 허용하고 그 이후엔 자동으로 특례를 없애는 ‘일몰의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입조처는 “3회 이상 연장할 필요가 있다면 일몰 후 제도를 다시 도입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할 것”이라며 “일몰기한이 설정되지 않은 항목들에 대한 심층 평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