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크선 이어 컨테이너 선사 인수…하림, 종합물류기업 도약한다
입력
수정
지면A3
하림, 우선협상대상자로김홍국 하림그룹은 회장은 지난달 23일 HMM 본입찰 마감 1시간 전까지 입찰 참여 여부부터 인수 희망가를 얼마로 적어 낼지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했다. HMM 인수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뒤 하림그룹의 운명을 결정할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린 결정이 6조4000여억원. 강력한 경쟁자였던 동원그룹을 1000억원 안팎의 근소한 차이로 앞선 ‘신의 한수’였다.
6.4兆 인수자금 마련 총력전
5000억 팬오션 영구채 발행하고
우호세력 호반그룹과도 협력
영구채 주식 전환 유예 안되면
자금조달 계획 수정 불가피
기업결합 심사도 넘어야할 산
○하림, 초대형 국적선사로 부상
18일 HMM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해진 하림은 ‘닭고기’로 잘 알려진 종합식품기업이다. 육계사업으로 시작해 사료·식품가공·유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옛 STX팬오션) 지분 58%를 1조80억원에 인수했다.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곡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을 인수해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보고 내린 결정이다.
곡물 유통부터 사료, 축산, 가공식품까지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하림은 벌크선 중심의 팬오션에 더해 컨테이너선 중심의 HMM을 붙여 그룹 전체의 사업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팬오션이 글로벌 8위 컨테이너선사인 HMM을 사들이면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을 모두 갖춘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국가 해운물류의 중추를 담당하는 초대형 국적선사로도 자리매김한다.이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은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5000억원 규모의 팬오션 영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우호 세력인 호반그룹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팬오션의 선박 자산도 유동화한다. 주요 계열사의 유상증자도 추진 중이다. HMM 인수를 위해 그룹 전체가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일각에선 하림그룹이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대금이 6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데다 해운업황이 고꾸라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HMM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7% 급감했다.
컨테이너선사 운영 경험이 없는 하림이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중 초대형선(1만TEU급 이상 선복량 기준)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HMM을 제대로 운영할 능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이어진다. 인수 이후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과 벌크선 등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지만 해운업황이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기업결합 심사 등 해결 과제 남아
하림은 이런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인수금융 부담도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게 하림 측 주장이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3조원이 넘는 인수금융 투자확약서(LOC)를 발급받았지만 실제 인수대금을 마련할 땐 인수금융으론 2조원을 넘기지 않을 계획”이라며 “각종 금융비용이 적은 건 아니지만 그룹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다만 하림이 계획했던 주주 간 계약 수정 제안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금 조달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하림은 본입찰 때 주주 간 계약 수정 제안을 통해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1조6800억원 규모 영구채의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하림의 HMM 지분율은 57.9%가 유지돼 3년간 매년 2895억원까지 배당받을 수 있었다. 향후 주주 간 계약 조건 협상 과정에서 매각 측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하림의 지분율은 38.9%로 희석돼 연간 배당금은 1945억원까지 준다. 인수 후 3년간 약 2850억원 자금이 추가로 필요해지는 셈이다.하림은 이 밖에 수정 제안에 △HMM 자사주 매입 허용 △JKL파트너스 보유 지분 5년 내 매각 허용 △산은·해진공 사외이사 지명 불가 등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밖으로 알려지며 크게 논란이 된 만큼 하림 측이 이를 고집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결합 심사도 넘어야 할 과제다. 하림 측 인수 주체인 팬오션과 HMM을 합병하면 국내에선 견제할 수 없는 초대형 국적선사가 탄생한다. 경쟁당국이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팬오션은 벌크선 중심, HMM은 컨테이너선 중심인 만큼 둘의 결합에 독점 우려가 커진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경쟁 후보였던 동원그룹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동원은 하림이 매각 측에 전한 수정 제안이 사실상 ‘게임의 룰’을 뒤흔드는 제안이라며 입찰 자체의 공정성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다만 매각 측이 하림의 제안을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실제 법적 대응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종관/최한종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