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요긴함을 품어야 진정한 풍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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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은행에 근무할 때다. 미국 연수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께 출국 인사를 드리자 만년필을 고쳐오라고 했다. 매일 쓰는 파카51 만년필이었다. 1941년에 출시되어 70년이 넘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명작이다. 18K 금촉을 쓰는 ‘파카51 골드 닙’은 뚜껑에 새겨진 로고가 시그니처 디자인이다. 책상에서 뭘 쓰다 손자가 오자 껴안은 아버지는 아이가 만년필을 집어들 때만 해도 좋아라 했다. 손자가 만년필을 거꾸로 들고 책상 위 유리판에 두어번 내리 찍었다. 제지할 겨를도 없이 눈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펜촉이 심하게 구부러졌다. 아버지는 손자를 내동댕이쳤다. 손자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그 만년필을 그냥 고쳐 쓰는 줄로만 알았다.
"오늘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구부러진 펜촉을 펴기만 하면 될 텐데요. 그게 미국에 있을까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몇 번을 고쳐봤는데 전처럼 부드럽지가 않다. 펜촉을 구해 와라. 미국인데 왜 없냐?”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 만년필 병원(FPH,Fountain Pen Hospital)은 뉴욕시청 뒤에서 쉽게 찾았다. 만년필 수리 전문 업체인 가게는 1917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노포(老鋪)다. 만년필을 내밀자 점원은 바로 파카51 골드 닙 브랜드라고 했다. “오오 불쌍하다”며 펜촉을 더는 쓸 수 없어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점원이 뒤 서랍을 열자 금촉이 그득했다. 그는 지금까지 8억 개나 팔렸다고 자랑하면서 제34대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파카51 만년필을 애용해 ‘아이젠하워 만년필’이라고 불린다고 소개하며 엄지를 치켜올렸다.귀국해서 바로 찾아뵙고 만년필 병원 얘기 끝에 “미국 참 풍요롭더라고요”라며 고쳐온 만년필을 드렸다. 아버지는 이내 잡기장에 시필(試筆)하며 연신 감탄했다. 그때 하신 말씀이다. “미국에는 없는 게 없다. 동경의 대상을 만나 맹목(盲目)이 된 너는 미국의 풍요를 보았겠지만 나는 요긴함을 읽었다. 언제고 어디서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충족해주는 게 요긴함이다. 요긴함이 충족되어야 진정한 풍요다. 그걸 모두 갖춘 미국의 힘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게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과 신념인 미국 정신이다. 미국 정신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자유와 평등’이다. 독립 선언서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하고 있고, 이는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라며 한마디로 미국 정신을 ‘비축(Reserve)’이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만년필 병원을 “나는 가보지 못했다만 참 대단하다”며 미국 정신을 녹여내 후세를 위해 요긴함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나라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민 정신이 있으므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라고 분석했다. 아버지는 “세상에 널린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일에는 꼭 필요한 요긴한 사람이 돼라”라고 주문했다.
아버지가 만년필로 그날 암송해 써준 시다. 법명 휴정(休靜)이 익숙한 서산대사(西山大師, 1544-1615)의 한시다. “눈 내린 들판을 지나갈 때[踏雪夜中去] 어지러이 걷지 마라[不須胡亂行]. 오늘 내 발자국은[今日我行跡]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 아버지는 김구(金九) 선생이 해방된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이 시를 읊어 그의 시로도 알려져 있다며 훌륭한 시라고 자경문(自警文)으로 삼으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번에 글을 쓰며 문장을 찾아보니 서산대사의 시가 아니라 조선 후기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시 ‘야설(野雪)’이다. 그의 문집 ‘임연당집(臨淵堂集)’에 실려 있다. 답설(踏雪)이 천설(穿雪)로, 금일(今日)이 금조(今朝)로 두 자만 바뀐 채 기록되어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 이여(李璵)의 후손으로, 동지중추부사·호조 참판·동지돈녕부사 겸 부총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서산대사의 시는 “밤에 눈을 밟으며 걸어가니 달빛이 옷을 비춘다. 한 폭의 그림처럼 평생을 살아가리라[夜雪踏中去 月明透衣來 一蓑煙雨任平生 任平生任平生]”로 79세의 나이로 임진왜란 후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떠나면서 지었다.
더 찾다보니 중국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42세 때 지은 그의 대표적인 시로 나온다. “밤에 눈을 밟고 가는구나, 함부로 걷지 마라. 달은 하얗고 넓고 텅 비었구나, 나는 길을 가는 것도 텅 비었구나. 어디로 돌아갈지 모르겠구나, 하늘과 땅도 텅 비었구나[踏雪夜中去 不須胡亂行. 月面白茫茫 我行路亦茫茫. 不知歸向何處去 天地茫茫茫]” 그는 밤에 눈을 밟고 가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함을 표현해 이양연의 시와는 주제가 다르다.
아버지는 파카 51 만년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돌아가셨을 때 쓰지는 못하셔도 중풍으로 굳은 오른손에 쥐고 계셨다. 염습할 때 만년필을 쥔 그대로 해달라고 했다. 오늘 파카51 에어로메틱 잉크주입방식 빈티지를 사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아버지의 만년필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만년필을 사서 손주들에게 이양연의 시와 함께 저 경구를 꼭 물려주고 싶다.<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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