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는 키웠는데 실속은 줄었다…M&A 후유증에 시달리는 글로벌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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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다국적 제약 유통사인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는 헬스케어 업체 서밋 헬스 시티 MD를 89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제약업계에선 대형 약국 체인과 의료기기 개발업체가 결합하게 되면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1년 뒤 현재 불어난 것은 비용뿐이었다. 차입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월그린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신용등급이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강등됐다.

시장 내 유동성이 풍부하던 시기에 인수합병(M&A)을 추진한 글로벌 대기업의 재정 상황이 올 들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올해 고금리가 12개월간 지속하면서 차입비용 부담이 커진 탓이다. 소비도 작년보다 둔화하면서 M&A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미미한 모습이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가 지난 5년간 대형 M&A 75건을 분석한 결과, 인수 이후 레버리지 비율을 줄인 기업은 절반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버리지 비율은 기업이 타인자본(부채)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레버리지 비율로는 부채비율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75개 기업의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부채 비율 평균값은 5년 전 2.4배에서 현재 2.7배로 증가했다. 75개 기업 중 25개의 부채비율은 현재 3.5배를 넘어섰다. 부채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수 이후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도 속속 나타났다. 통신업체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 경쟁업체 쇼 커뮤니케이션을 인수한 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악화하면서 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강등됐다. 향료 제조 업체 인터내셔널 플레이버 앤 프래그런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팀 아이저트 포르투갈 노바 경영대학원 교수는 "상대적으로 차입 비용이 낮았던 시기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단기 부채를 조달해 기업을 인수했다"며 "대다수가 재정 건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규모 부채를 조달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M&A로 인한 후유증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M&A로 인해 수익성이 개선되는 속도보다 부채 비용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서 리밸런싱(재융자)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다. 또 코로나 팬데믹 기간 쌓아놓은 현금이 감소하면서 소비 여력은 줄었고, 기업들의 실적도 더 줄어들 전망이다.

예정됐던 M&A를 취소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제약사 바이엘AG는 당초 미국의 생화학 기업 몬산토를 630억달러에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경영 상황이 악화하면서 지난달 몬산토 인수를 취소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어도비도 클라우드 기반 디자인업체 피그마 인수를 취소했다. 규제 당국의 반대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 환경을 고려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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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압박이 심화하면서 기업들은 생존전략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M&A로 불렸던 몸집을 다시 줄이려는 것이다. 지난 10월 US뱅크가 미국 내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93%가 위기관리에 자신감이 없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안건으로는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 꼽혔다. 이를 위해 미래 성장성을 희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월그린은 올 들어 수익성이 악화한 사업장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의 소수 지분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단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이런 고육책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산관리업체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아담 와이틀리 글로벌 신용 책임자는 "기업들은 어떻게든 신용등급을 투자 등급에 머물게 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라며 "앞으로 침체기에 접어들면 이를 방어하기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