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80%가 쿠세권…아마존처럼 '생활 인프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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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공룡' 쿠팡 대해부경남 양산시가 계획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1만4893가구 입주를 목표로 조성 중인 사송신도시(양산시 동면 사소리·내송리)엔 대형마트가 없다. 지난해부터 7000여 가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지난 6월 이전까지는 쇼핑을 위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양산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입주 초기 이곳이 ‘무늬만 양산’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유다.
(2) 유통 판 뒤집은 비결
편리함 무기로 소비자 일상 점유
55세 이상 사용자도 20% 육박
유통업계 최초 年매출 30兆 전망
소매시장 점유율은 8%지만
"신도시엔 마트 있어야" 공식 깨
하지만 6월부터 쿠팡이 사송신도시에 로켓 배송을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주문 후 이르면 당일 물건이 배달되자 사송에서만 매일 1000~1500건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 덕분에 양산시에 쏟아지던 신도시 입주민들의 쇼핑 관련 민원은 말끔히 사라졌다.
◆고객 한 명당 소비액, 2년 만에 27% 쑥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6조5917억원이던 쿠팡 매출은 창업 13년차인 올해 30조원 고지를 넘을 게 확실시된다. 2021년 20조원 고지를 밟은 지 불과 2년 만이다.이는 오프라인 유통 1위 이마트 매출을 가뿐히 넘어서는 규모다. 이마트는 올해 1~3분기 22조1161억원(할인점·트레이더스·노브랜드 합산)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이마트가 내년부터 슈퍼마켓, 편의점과의 통합 상품 조달을 시작하겠다고 한 것도 쿠팡에 ‘덩치’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유통업계에서 매출은 납품사와의 협상력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쿠팡의 초고속 성장은 소비자들의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습관이 되려는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범석 쿠팡Inc 대표의 창업 모토는 ‘대체 불가능한 쇼핑의 최종 종착지’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쿠팡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밖에 없도록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목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쿠팡의 고객 한 명당 소비금액은 2021년 3분기 31만2000원에서 올 3분기 39만7040원으로 27.2% 불어났다.
◆‘유통=부동산’ 공식 깨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기 위한 쿠팡의 전략은 롯데쇼핑,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쿠팡이 대세가 되기 전까지 유통업체들은 소비자와의 접점인 매장을 부동산의 관점에서 바라봤다.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에 점포를 지어 매출 증대와 부동산 가치 상승을 동시에 누렸다. 차가 없는 1020세대와 거동이 어려운 노인은 고객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공급자 우선주의다.이에 비해 쿠팡은 실핏줄처럼 전국에 깔아놓은 배송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존 유통의 한계를 극복했다. 로켓 배송(익일 배송 포함)이 가능한 ‘쿠세권’(쿠팡+역세권)은 전국 226개 시·군·구 중 80.5%에 달한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도 배송에 2~3일은 걸리는 강원 삼척 도계읍에 지난달부터 로켓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600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도계읍의 지난달 주문 건수는 5000건에 달했다. 제주 우도면 우도 섬마을에도 서울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로켓 배송망을 타고 하루 만에 간다.
◆초고령화 지역도 쿠세권 포함시켜
쿠팡이 초고령화 지역인 도서·산간 오지까지 쿠세권에 포함하면서 쿠팡 앱에 접속하는 이들 중 장년층과 고령층 비중도 커졌다. 지난달 기준으로 55세 이상 비중이 17.6%에 달해 18~24세(19.5%)와 비슷하다.미국의 아마존같이 ‘생활 인프라’로 굳어져 버렸다는 얘기다. 쿠팡의 국내 소매시장 점유율이 8~9%(증권업계 올해 추정치)로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데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 유통의 통념을 깨부순 쿠팡의 뒤집기 전략은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김찬호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령화로 인한 지방 소멸 문제는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필수라고 여기던 기존 인프라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시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쿠팡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면서 이게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