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죽은듯 뮤지컬 관람하는 '시체 관극'은 없어져야 할 적폐인가

[arte] 송한샘의 씨어터 인사이트
최근 모 온라인 매체에 의해 촉발된 한 소극장 뮤지컬의 ‘시체 관극’에 대한 논란이 다른 일간지를 거쳐 사회관계망 서비스까지 전이된 바 있다. 소위 시체 관극이란 대학로의 극장들, 특히 300~400석 이하의 중소극장 뮤지컬을 중심으로 형성된 엄숙한 관극 문화를 풍자한 말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대화하거나 부스럭거리지 않는다. 큰 웃음이나 환호는 자제하고, 박수도 강도와 길이를 최소화한다. 상체를 숙여 뒷좌석 관객의 시야를 가리거나 잦은 움직임으로 주위 관객의 몰입을 깨는 일체의 행위 역시 금기의 대상이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타인의 관극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신 역시 타인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구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행위들은 중소극장의 일상적 고관여형 관객에게 대체로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하거나 우연한 기회에 공연장을 찾는 입문자들이나 저관여형 관객에게는 다소 고압적이거나 부자연스럽게 비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촉발된 논의의 전개는 다소 저관여형 관객의 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학로 관객이 주도하고 있는 엄숙주의 문화가 신규 관객의 대학로 유입을 차단하고 나아가 뮤지컬 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몇 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첫째, 이른바 엄숙주의 관극 문화가 신규 관객의 유입을 차단하고 뮤지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가? 둘째, 엄숙주의 관극 문화는 과연 관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셋째, 그것은 지양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선 현재 대학로의 뮤지컬 관극 문화가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거나, 저해할 것이라는 전망은 다소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 관객 다수가 주로 이용하는, 엄숙한 객석 풍경이 익숙한 극장은 두산아트센터(2개 관),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2), 아트원씨어터(3), 예스24스테이지(3), 유니플렉스(3), 드림아트센터(4), 서경대학교공연예술센터 스콘(2), 티오엠(2), 링크아트센터(2),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 플러쓰시어터, 자유극장, 더굿씨어터, 예그린씨어터, CJ아지트 등으로 30 개관에 달한다.
출처 =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아트원씨어터
이들 극장 대부분 연간 쉼 없이 뮤지컬을 공연한다. 대학로 공연제작사들 사이에 2024년 대관이 “씨가 말랐다”라는 말이 이미 연초부터 돌았으며 2025년 대관도 거의 다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이나 국립정동극장에서도 뮤지컬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신규 관람객 유입 없이 N차 관람이 일상인 마니아들의 힘만으로 이 모든 공연이 유지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만큼 현재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중소극장 뮤지컬 신은 활성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중소극장 뮤지컬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의 절대 다수가 라이선스가 아닌 우리의 오리지널 뮤지컬이라는 데 있다. 뿐만 아니다. 대학로 중심의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이 이웃나라 일본, 중국에서 현지 언어로 공연되는 것은 어느새 비일비재한 일이 되었고, 이제는 유럽까지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 다수는 소위 엄숙주의 관극 문화가 보편화되던 시기 및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 결국 엄숙주의 관극 문화가 뮤지컬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쉽사리 입증되기 힘들어 보인다. 시장은 늘 정직하고 시장의 한 축은 분명 소비자가 지탱하고 있으니 말이다.다음으로 엄숙주의 관극 문화가 관객 주도로, 관객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 생각해 보자. 첫째, 엄숙주의 관극 문화는 본래 관 주도의 공공극장이 공연을 '쇼'(Show)가 아니라 '예술'로 대하면서 만들어진 것에 기인한다. 런던은 셰익스피어 시대부터 땅바닥 관객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무대 바로 앞에 입석을 마련했다. 관객들은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내내 함께 웃고 울고 심지어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오늘날의 뮤지컬 시어터도 본래 송앤서퍼룸(Song & Supper Room), 뮤직홀 등의 이름과 형태를 거쳐 완성되었다. 식사와 관극을 함께 하던 형태에서 점차 식사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관극이 주가 되었으나, 공연 전이나 인터미션에 술과 음료, 간단한 다과를 즐기는 것은 여전히 일상적이다.

미국 역시 뮤지컬의 전 단계인 보더빌부터 교회, 창고, 천막 등 어디서든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카바레 형태의 극장에서는 아직도 식사를 하면서 뮤지컬을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뮤지컬을 쇼라고 부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 주도로 관극 외에 다목적으로 지어진 공공극장에서 근대극을 선보이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던 전통연희의 맥이 끊기고, 관극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이거나, 소위 고급문화인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영미권과 달리 객석에 생수 외 다른 음식물 반입이 불가능한 것도 이 같은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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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엄숙주의 관극 문화는 극장 규모에 반비례한다. 대체로 규모가 큰 대극장일수록 객석 의자와 바닥의 흡음력이 높아지며 천고가 높아지기에 소음도가 낮아진다. 등받이에서 등을 떼거나 상체를 수그려 무대를 볼 필요가 없는 객석의 비율도 대극장일수록 크다.

반면 대학로 중심의 중소극장은 대체적으로 규모가 작을수록 관극 환경이 열악하다. 좁은 공간에 가능한 많은 객석을 집어넣으려다 보니 앞뒤, 옆자리와의 간격도 좁다. 조금만 움직여도 주위 관객의 집중이 흐트러지기 쉽다. 흡음성을 고려하지 않은 의자나 바닥 재질, 낮은 천고로 인해 소음도가 높다. 관극 환경이 쾌적하고 편안하면 소위 ‘엄숙’해질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주변 관객의 관극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는 관객이 경직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셋째, 엄숙주의 관극 문화는 극의 장르나 스타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 대학로 뮤지컬 중에서도 뮤지컬 코미디라 할 수 있는 '오즈', '웨스턴 스토리', '난쟁이들', '외쳐, 조선!', '시스터즈', '레드북' 등의 객석 풍경은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 내에 구조적으로 희극적 긴장완화를 위한 신이 배치되어 있는지에 따라 관극 분위기도 밝아진다.

대표 창작 스테디셀러인 '빨래'나 라이선스 뮤지컬 '구텐버그' 등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스모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은하철도의 밤', '더테일 에이프릴 풀스', '와일드그레이', '쇼맨: 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호프' 등 관객의 집중을 보다 더 요구하는 뮤지컬 드라마의 경우 상대적으로 엄숙해진다.

이는 대극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시스터 액트',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뮤지컬 코미디라면 '스위니토드',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지킬앤하이드'는 뮤지컬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간혹 공연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예전의 관극문화는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말을 듣곤 한다.

'김종욱 찾기', '아이러브유', '싱글즈', '형제는 용감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이블데드', '로키호러쇼', '그리스', '헤드윅'등의 뮤지컬 코미디 장르가 중소극장 트렌드를 주도했던 2000년대 중후반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뮤지컬 '쓰릴 미'의 객석은 매우 고요했다.

결국 현재의 엄숙주의 관극 문화는 제작사들과 창작자들이 공급하는 공연 장르가 뮤지컬 드라마에, 그중에서도 희극적 긴장 완화 신의 비중이 매우 작은 작품들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장은 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에 소비자인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제작자들이 공급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적어도 관객 홀로 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뮤지컬 <쓰릴 미>
결국 중소극장 뮤지컬의 ‘시체 관극’ 현상은 우리 근대극의 형성과정, 규모에 따른 극장의 관극 환경, 시장의 트렌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보다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소위 ‘시체처럼’ 작품을 관람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극에 집중하고 있을 때 부산한 주위 관객으로 인해 몰입이 깨지는 것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 면에서 엄숙주의 관극 문화가 단순히 그저 지양해야만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관극의 행동 양상도 작품의 스타일과 장르에 따라, 극장의 규모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누구든 시장과 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늘 정직하고, 재빠르고, 변덕스럽다.고난의 코로나 시기에도 대학로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 관객도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수 있다. 적어도 현재 우리 중소극장 창작 뮤지컬들이 높은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장기적으로 K뮤지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면, 관극 현상의 어느 단면만을 소모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그 원인과 형성 과정을 보다 면밀히 살피고, 단점의 보완과 장점의 강화를 모색하는 담론의 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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