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마릴린 먼로? 마구 예쁜 나머지 섹시할 수가 없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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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이름이 착착 입에 붙지 않는다는 건 여배우에겐 금기시될 만큼 안좋은 일이다. 이름만이 아니라 자칫 존재 자체도 기억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란 이름을 술술 외우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은 그..그..있잖아. 그 영화에 나온 여자말야, 식으로 얘기하기 십상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를 가리키며 ‘그 영화’로 꼽을 대표적인 그 영화는 과연 무엇일까.
아나 데 아르마스
개인적으로는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인터넷 플랫홈 방송 훌루(Hulu)와 미국 OTT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공개된 ‘딥 워터’를 봤으면 그걸 뽑았을 가능성이 크다. 벤 에플렉과 공동 주연이다. 그 유명한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리플리』와 ‘캐롤’의 원작인 『소금의 값』을 쓴 그 작가!)의 소설 『심연』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게다가 감독은 에이드리언 라인(‘나인 하프 위크’와 ‘롤리다’ ‘언페이스풀’을 만든 그 감독!)이다. 배우들의 연애는 다소 통제되고 관리될 필요(?)가 있는데 원래는 2021년에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두 사람이 1년을 사귄 후 헤어지는 바람에 영화가 유탄을 맞았다. 제작사인 뉴 리젠시와 20세기 폭스 스튜디오 등은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바로 VOD로 가는 결정을 내렸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대표 격 영화로 ‘블론드’를 꼽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스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본명이 노마 진인 마릴린 먼로는 예쁘다기보다는 극단적으로 섹시한 여자이다. 마릴린 먼로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파티에 가서 ‘해피 버스데이’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때 재클린 케네디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영화 ‘블론드’에서 노마 진 역할을 했던 아나 데 아르마스는 사실 먼로처럼 뇌쇄적인 섹시미를 지녔다기 보다는 정말 예쁜 얼굴을 지닌 배우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이목구비가 그지 없이 예쁘다. 근데 이상하게도 섹스 어필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블론드’는 물경 168분의, 다소 지루한 작품이었는데 그건 조이 캐롤 오츠의 원작 소설이 워낙 난독의 작품이었던 것 때문으로 보인다. ‘블론드’는 아나 데 아르마스에게는 야심의 작품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돌이켜 보면 아나 데 아르마스가 섹시미에 가까웠던 자태를 드러낸 영화는 드니 빌뇌브의 수작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여기서 아르마스는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의 홀로그램 여자 조이로 나온다. 쉽게 얘기해서 주인공의 섹스돌이다. K는 조이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에게 엄청나게 힐링을 주는 AI 여자이다. K는 리플리컨트 헌터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아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는 伴인이고 半인조인간이다. 그래서 K는 더욱 조이에게 빠진다. 영화는 디지털 속 여인과의 러브 라인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런데 아나 데 아르마스는 여기서도 섹시하기 보다는 그냥 마구 예쁘다. 아주 아주 사랑스럽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그래서 마릴린 먼로처럼 되지 못한다. 먼로만큼 세기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존재로는 늘 기억될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나왔던 ‘나이브즈 아웃’에서도 그랬다.아나 데 아르마스는 여기서 미스테리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호인 트롬비 가문의 괴짜 노인 할란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의 개인 간호사이자 도우미로 나온다. 이름은 마르타인데 처음에 등장할 때 정말 그냥 집안 가정부처럼 분장하고 나온다. '저렇게 예쁜 얼굴을 어떻게 저렇게 그냥 쓸 수는 있을까'라고 분개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아나 데 아르마스는 극중에서 점점 더 자기의 역할을 부양시킨다.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티 류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한다.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은 마치 크리스티의 탐정 애슐 포와르 마냥 트롬비 가문의 사망 사건을 파헤친다. 할란은 돌연사 했고 그의 막대한 재산을 놓고 첫째 딸과 그녀의 남편 부부 (제이미 리 커티스와 돈 존슨), 막내 아들(마이클 섀넌)과 죽은 둘째 아들의 며느리(토니 콜레트), 첫째 딸의 아들, 곧 외손자(크리스 에반스) 등이 경쟁을 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맡은 도우미 처녀 마르타의 증언은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진다. 그녀는 과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할까.특이한 것은 ‘나이브즈 아웃’에서 아나 데 아르마스는 중미 나라에서 온 불법 이민자 가족의 딸로 나온다. 실제로 아나 데 아르마스는 쿠바 출신이다. 강고한 사회주의 국가로 지난 70년간 미국에 의해 강제로 폐쇄돼 있는 쿠바는 실로 가난한 나라이다. 거의 북한 같고 그래서 북한하고 70년 맹방이다. 민족적 자존심, 체 게바라의 후예라는 자부심 또한 하늘을 찌른다. 아름답지만 가난하다. 쿠바 이름 아나 셀리아 데 아르마스 카소의 얼굴에는 그게 스며 있다. 쿠바 국립 연극학교를 나왔다. 쿠바에서는 모든 교육이 무료이다. 아르마스가 가난한 나라에서 스페인을 거쳐 미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녀는 스페인, 미국을 포함해 쿠바 국적도 버리지 않고 있는데 친 카스트로 성향인지 반 카스트로 성향(쿠바 출신 할리우드 배우 중에는 앤디 가르시아가 해외에서 반정부 활동을 했다)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은 카스트로 체제였던 쿠바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는데, 존 F. 케네디를 암살했던 리 하비 오스왈드가 소련 사회주의 신봉자로서 쿠바를 거쳐 미국 달라스로 가서 총을 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가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만든 2019년작 ‘와스프 네트워크’에 출연한 걸 보면 반 카스트로 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 올라 있는 이 영화는 매우 특이한데 1990년대 초 미국 내 반 카스트로 테러 조직에 침투하는 쿠바 정보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쿠바를 다니면 친 쿠바 성향이 되는데 아사야스 감독이 그런 사람일 것이다. 나 역시 쿠바를 네 차례 정도 다녀 본 결과 쿠바 여인 중에는 아르마스 급 미모의 여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건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밭을 매는 여인이 다 김태희이다, 라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키가 170 정도이고 다리가 길다. 아찔한 각선미를 지니고 있다. 007 최후의 작품이고 나름 걸작으로 꼽히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아르마스는 본드를 돕는 CIA 요원 팔로마로 나온다. 검은 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는데 깊게 파인 가슴 라인 보다는 슬릿 스커트를 펄럭이며 쭉 뻗은 다리로 옆차기를 하는 모습이 영화를 매우 흥미롭게 만들었다. 아나 데 아르마스의 허벅지 연기는 ‘레지던트 이블’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선보인 트레이드 마크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007을 통해 얼마든지 벌거벗은 다리를 노출시킬 수 있음을 보여 주었지만 제임스 본드가 사망한 관계로 007 영화에는 다시 출연할 기회가 없어졌다.아나 데 아르마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크리스 에반스와 나온 '고스팅'은 러브 스토리였다가 첩보 액션 스릴러였다가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졸작 취급을 받지만 아르마스의 앳된 얼굴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작품이다. 아르마스는 요즘 액션을 많이 한다. 라이언 고슬링과 나왔던 ‘그레이 맨’은 그야 말로 액션 과잉의, 과잉의, 과잉의 작품이었다. 넷플릭스가 돈을 뿌렸다. 영화는 망작이었다.
아르마스의 차기작도 아마 ‘존 윅’의 스핀 오프로 알려졌다. 제목은 ‘발레리나’이다. 전종서의 ‘발레리나’와 헷갈리면 안되지만 헷갈릴 내용이긴 하다. 잘 구분해서 보시기들 바란다. 예쁜 아르마스가 작품을 더 잘 골랐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예뻐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