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을 매료시켜 딱 한번 캐롤음반 내게 한 흑인 소프라노

[arte] 황지원의 프리마 돈나
성니콜라스성당
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 대략 30분쯤 가면 오베른도르프(Oberndorf)라는 작은 산골마을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겨우 3000여명의 주민들이 현대문명의 요란함과는 상관없이 조용하고 고즈넉한 삶을 즐기고 있다. 마치 마을 전체가 고요한 수도원과도 같은 분위기다.

바로 이 곳이었다. 181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마을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처음으로 울려 퍼졌다. 성당의 젊은 사제 요제프 모어 신부가 가사를 쓰고, 마을의 음악교사였던 프란츠 그루버가 곡을 붙였다. 너무도 아름답고 소박한 이 음악은 곧 오스트리아 전역과 독일 일대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전 세계인의 캐롤이 되어서 영어 가사를 붙여도, 한글로 노래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그랬다. 너무나 친숙한 선율이라 사람들은 ‘원래부터 있던 음악’으로 여겼다.

티롤 지방의 알프스 산간마을 민요에 성탄절용 가사를 붙인 것이라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돌았다. 어디에선가는 대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이 쓴 곡이라고도 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젊은 사제와 음악 선생님이 마을의 고즈넉한 성탄 분위기에 감동하여 쓴 작지만 소박한 음악이라는 사실은 좀 더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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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노래한 명창들은 무수히 많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의 음성으로 들어보면 어떨까. 그녀는 오랫동안 백인 소프라노들이 독점해왔던 오페라 무대의 ‘프리마 돈나’ 자리를 차지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다.특히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잘츠부르크, 밀라노, 빈, 뉴욕 등 전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숱한 감동의 명연을 펼쳐왔다. 프라이스의 음성은 마치 벨벳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특징인데, 기품 있는 중저음과 전율을 불러 일으키는 극적인 고음 외에도 흑인 특유의 풍부한 소울(Soul)이 느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특유의 탐미적인 태도와 고고한 예술관을 지닌 카라얀이 그래도 일생에 단 한번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을 녹음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레온타인 프라이스와의 레코딩이다. 카라얀은 어떤 특정음악에 딱 들어맞는 완벽한 아티스트를 발견할 때까지는 녹음 작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결국 카라얀이 생각한 가장 위대한 캐롤 음악 소프라노는 레온타인 프라이스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음악의 ‘반주’는 저 유명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으니, 사실 이보다 호화로운 진용의 캐롤 음반을 다시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카라얀의 풍성한 지휘 아래 프라이스의 감동적인 소릿결을 타고 흐르는 캐롤은 신성의 감동과 지상의 따뜻함을 수시로 오간다. 계피향이 솔솔 피어오르는 따뜻한 글뤼바인 한잔을 끓이거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온화한 모닥불과도 같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따뜻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고, 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Karjan_Price 캐롤 음반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