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면 입으세요 '더플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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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이헌의 스타일 인문학뚝 떨어진 기온 탓에 웅크려지면서도 설레고, 귀찮은 줄 뻔히 알면서도 함박눈이 기다려지는 12월이다. 일년 열두 달 중 마지막 달, 12월의 절반쯤은 이렇게 효율보다는 낭만에 기대 조금 들뜬 채 설렘을 가득 품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필파워 만땅 올려둔 무조건 따듯하고 가볍고 편안한 거위털 패딩보다는 별로 따뜻하지도 않거니와 어쩌면 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면서도 조금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더플 코트가 이 비효율과 낭만의 계절에 안성 맞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혹독한 전장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생존을 위해 고안된 이 코트가 어쩌다 우리에게 낭만의 아이콘, 설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는지 그 과정을 알고 입는다면 더 즐겁고 보람된 멋 내기가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더플코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이렇게 군수품으로 개발된 싸고 튼튼한 코트는 전후에 민간인들 특히 학생들의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특히 영국군에 의한 승리로 자유를 얻은 나라에서는 더플 코트를 입는 일이 나치의 혹독한 박해로부터 자유의 획득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전쟁의 잉여 군수품을 민간에 공급하던 글로브올이라는 한 영국 업체는 더 가벼운 소재와 몸에 더 잘 맞는 디자인 개발로 순수 민간 더플 코트를 생산 판매하면서 로프와 나무 단추를 가죽과 소뿔로 업그레이드했고 오늘날까지 더플 코트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선 핵 철폐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의 가두 행진 시위에 더플코트가 자주 목격되면서 자유와 평등 평화 같은 이미지를 가득 품게 된다. 또한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은 동화 캐릭터 곰돌이 패딩턴이 1958년 원작이 빛을 본 이래로 2014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일관되게 더플 코트를 입어왔다는 점은 특히 이 코트의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 패딩턴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질 때 양차대전 후 어른이 된 전쟁고아들은 패딩턴에게 달려있던 가는 철사에 매달린 갈색 종이에 씌여진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라는 인식표 같은 글귀를 보면서 양차 대전 후 전쟁의 상흔을 추억처럼 떠올렸고 이 파란색 더플 코트를 입은 갈 곳 없는 곰 한 마리는 큰 울림을 남기며 더플 코트의 포근하고 따사로운 이미지에 온기를 더했다. 성장한 전후 세대들에겐 전쟁에서 떠나 보낸 부모 대신 안아주던 더플코트의 포근함과 갈 곳없는 곰 패딩턴의 처지에 크게 감정이입을 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대한민국을(아직도 개고기를 먹는) 미개국으로 지명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연기력을 인정 받은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진실(1960)’에서 착용한 더플 코트는 이 코트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그 외에도 한국에선 '애정과 욕망 (Carnal Knowledge)'으로 알려진 영화 속에서 잭 니콜슨과 아트 가펑클이 비틀어진 애정과 욕망을 키우는 대학 시절 애용하던 코트로, 한 남자의 여성을 향한 우상화, 그리고 다른 남자의 여성 대상화를 대조적인 컬러의 두 개의 더플 코트로 표현하여 영화적 미장센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록음악 팬들에겐 1976년에 제작된 컬트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입고 나와 캐릭터의 표현에 활용한 변형된 더플 코트가 뇌리에 선명할 것이다.
승리와 평화, 그리고 위로와 추억의 더플 코트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안아주는 코트다. 앞으로 누구를 통해서 또 어떤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까? 매서운 추위, 밖에는 함박눈이 내려도 더플 코트를 입을 용기를, 그리고 그 코트를 입고 누군가를 품어줄 위로의 마음도 함께 간직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