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聖誕(성탄), 李忠憲(이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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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聖誕(성탄)李忠憲(이충헌)

乾象星光明又淸(건상성광명우청)
萬王王下大東城(만왕왕하대동성)
羔羊贖罪無窮義(고양속죄무궁의)
寶血救援永遠生(보혈구원영원생)
福音經內神人和(복음경내신인화)
眞理道中宇宙晴(진리도중우주청)
惟尊至聖誰知敬(유존지성수지경)
世世榮華十字名(세세영화십자명)

[주석]
* 聖誕(성탄) : 성탄절(聖誕節), 크리스마스(Christmas).* 李忠憲(이충헌, 1915~1984) : 본관은 함평(咸平), 호는 경신(景信)으로 죽헌(竹軒) 박제봉(朴齊鳳) 선생과 월담(月潭) 윤복영(尹復榮) 선생의 문하에서 한문과 한시를 수학하였다. 평택(平澤)에서 세거하며 중향당(衆香堂)이라는 한약방을 경영하는 한의학자(韓醫學者)이자 교회 장로로서 평생토록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편찬한 책으로는 『경신의방(景信醫方)』이 있고, 유고집으로는 350여 수의 한시 등이 수록된 『은몽서(恩蒙叙)』가 있는데, 제목은 “하나님의 홍은(鴻恩)을 평생 동안 입음이 얼마나 감사한가!”라고 한 선생의 신앙 회고록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

* 乾象(건상) : 하늘의 현상, 곧 일월성신(日月星辰)의 변화하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때로는 간단히 ‘하늘’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星光(성광) : 별빛. / 明又淸(명우청) : 밝고 또 맑다. 밝고도 맑다.

* 萬王王(만왕왕) :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세상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높으신 왕 또는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왕을 가리키는 말인 ‘만왕의 왕’을 한문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下(하) : 내리다, 내려오다. / 大東城(대동성) : ‘대동의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羔羊(고양) : ‘羔’는 어린 양을, ‘羊’은 큰 양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羔羊’을 어린 양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 贖罪(속죄) : 어떤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贖良) 받는 일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량한 일을 말하는데, 이를 가리켜 대속(代贖)이라고 한다./ 無窮義(무궁의) : 다함 없는 뜻.

* 寶血(보혈) : 보혈, 고귀한 피.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고귀한 피를 가리키는데,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어준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상징한다. / 救援(구원) : 보통은 노예 상태나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기독교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가 많다. / 永遠生(영원생) : 영원한 삶, 영생.

* 福音(복음) : 복음. 복된 소식, 반가운 소식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일컫는 말이다. / 經內(경내) : <복음을 전하는> 성경 안. / 神人和(신인화) : 하나님과 사람이 화합하다.* 眞理(진리) : 진리.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 후에 부활한 것을 중대한 참으로 여기기에 이를 진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주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 관련된다. / 道中(도중) : 도중에, 가는 길에. / 宇宙晴(우주청) : 우주가 쾌청하다. 기독교에서는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 보존되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 惟尊至聖(유존지성) : 오로지 존귀하고 지극히 성스럽다, 또는 그런 사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 誰知敬(수지경) : 뉘라서 공경할 줄 알까?

* 世世(세세) : 대대로, 만세토록, 영원히. / 榮華(영화) : 보통은 세상(世上)에 드러나는 영광(榮光)을 가리키지만, 기독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의 자랑, 긍지, 자부심, 고귀함 등을 넘치도록 포함하고 있는 복된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영광(榮光)과 동일시 되는 경우 또한 흔하다. / 十字名(십자명) : ‘십자(가)’라는 이름.

[태헌의 번역]
성탄절에

하늘에 드리운 별빛 밝고도 맑은데
만왕의 왕 주(主)께서 이 땅에 오셨네
어린 양 속죄의 뜻 다함이 없어
보혈 흘리시어 영원한 삶 구원하셨네
복음 담긴 성경 안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이 화합되니
진리로 가는 길에는 우주도 쾌청하여라
오직 존귀하고 지극히 성스러운 분, 뉘라서 공경할 줄 알까?
만세토록 영광스러울 ‘십자’라는 이름이여!

[전언(前言)]
역자는 25년여 전에 경신(景信) 선생의 삼남(三男)이 되시는 이계준(李啓準) 선생님에게 의뢰받아 350여 수 가량의 경신 선생의 한시를 번역하였더랬다. 이계준 선생님은 당시에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로 봉직하고 계셨는데, 역자의 지도교수이신 서울대 중문학과 이병한(李炳漢) 선생님에게 번역할 사람 주선을 부탁하여 마침내 역자가 번역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역자는 경신 선생은 물론 경신 선생의 3남 3녀 자제분들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역자는 지금에도 이것을 번역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택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신 선생은 한문과 한시를 공부한 한의학자(韓醫學者)이자 기독교인이라는 매우 독특한 캐리어를 가지신 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캐리어가 한시에도 상당한 정도로 투영되어 역자에게 매우 새로운 한시 세계를 맛보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경신 선생은 역자가 만난 최초의 크리스천(Christian) 한시인이 되는 셈이다. 다만 역자가 과문(寡聞)인 데다 비기독교인이어서 선생의 시 세계를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이는 역자가 적임(適任)이 아닌 데도 번역을 수락했기 때문에 빚어진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점 때문에 역자는 경신 선생과 선생의 후손들에게 죄스러울 때가 무척 많았더랬다.

그러나 역자는 대학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할 때 경신 선생의 시 약간 수(首)를 강의 자료로 종종 활용해왔기 때문에 경신 선생에 대한 고마움은 언제나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오다가 올해 성탄절이 마침 역자가 칼럼을 발행하는 날짜와 비슷하게 겹치기에 문득 경신 선생의 <聖誕(성탄)>이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성탄’을 노래한 한글시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한시는 그 전례(前例)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으니, 성탄절을 노래한 이 시가 독자들에게는 의외의 선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마침내 무지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칼럼을 작성해 보기로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번역 시는, 경신 선생의 차남(次男)으로 가업을 이어받아 약업(藥業)에 종사하시는 이계석(李啓錫) 선생님과 상의하여 몇 글자 고쳤다. 이 시의 게재를 허락해주신 이계석, 이계준 두 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번역노트]
역자가 오늘 소개한 이 시는 기독교인이 쓴 한시이다. 그러므로 사용된 시어나 전체적인 얼개 등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전언에서 이미 밝혔듯 역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기독교인이 쓴 한시 역시 한시이므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이 한시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역자 생각에는, 이 시에 사용된 시어들이 평범해 보여도 거의 모두가 기독교의 핵심 개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대충 읽어서는 상당히 난감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역자는, 얼마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이 시의 주석 부분을 정독해주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 시의 얼개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기련(起聯:1,2구)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인 성탄절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고, 함련(頷聯:3,4구)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평생의 일을 핵심을 들어 말한 것이며, 경련(頸聯:5,6구)은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복음이 후인들에게 주는 기쁨을 말한 것이고, 미련(尾聯:7,8구)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많아도 기독교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십자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영원할 것임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가 이 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감상할 적에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두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성광(星光)’과 ‘대동성(大東城)’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단어는 모두 기련에 있다. 한시, 특히 율시(律詩:8구로 이루어지는 중국 한시의 한 양식)를 많이 감상해본 독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기련은 대개 시의 제목을 풀이하는 말로 시구가 엮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감상할 때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역자 생각에 적어도 이 시에서는 기련의 내용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시인의 의도를 놓쳐버리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역자가 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따지고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이 곧 이 시에 대한 역자의 감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역자는 이 시를 처음으로 번역할 적에 기련에서 별빛이 맑고 밝다고 한 것을 단순히 아기 예수가 오기 전의 밤 풍경을 얘기한 것으로 이해하였는데, 이는 완전한 오독(誤讀)이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독한 것임을 역자 스스로가 알게 된 것은 나이가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이 시에서의 ‘별빛’은 베들레헴(Bethlehem)의 별을 보고서 메시아(Messiah)의 탄생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하여 예루살렘(Jerusalem)으로 향했다는 동방박사(東方博士)들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언급한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맑고 밝은 별빛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하늘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자가 보기에는 여기에 더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뻐하는, 다시 말해 신앙의 기쁨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류에게 맑고 밝은 빛을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가 미련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직 존귀하고 지극히 성스러운’ 분이 되었음에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경신 선생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경신 선생은 십자가는 영원할 것이라고 하며 기독교의 불멸의 신앙을 예측하였다. 이 대목에서 역자는 다소 엉뚱하게 영롱한 별빛이 비친 십자가를 떠올려 보았다. 별빛이 복음과 진리를 암시하며 십자가 위에 머문다고 여긴 역자의 이러한 상상은, 적어도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경신 선생은 왜 만왕의 왕[아기 예수]이 내려온 곳을 베들레헴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인 대동성이라고 하였을까? 역자가 이 대동성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경신 선생의 신앙관이 어떠했을지 좀은 알 수 있을 듯하였다. 베들레헴을 가리키는 한자어인 ‘백리항(伯利恒)’을 찾으려고 마음먹었다면 찾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베들레헴과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고 머나먼 곳의 대동성을 거론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예수가 있다고 여긴 경신 선생의 신앙관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쯤에서 역자가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어느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예수의 상을 그리게 하였더니 다들 미남 백인 예수상을 그렸으나, 오직 한 학생만이 머리가 자기처럼 곱슬곱슬하고 피부색이 검은 흑인 예수상을 그렸다고 했다. 화가 난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에게 그 학생을 처벌해주기를 요청하자, 교장 선생님이 “이 학생이 그린 예수가 진정 우리의 예수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그 얘기가 경신 선생의 신앙관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아래에 경신 선생의 시문집 발행을 축하하며 역자가 지은 졸시 한 수를 붙여두고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경신 선생이 유난히 좋아하셨던 ‘경(庚)’ 운목(韻目)에 속하는 글자로 압운하며 지은 어설픈 시이지만, 선생에 대한 흠모심을 바탕으로 지은 것임을 저 하늘에 계실 영령께서도 아시리라 믿는다. 시절도 마침 경신 선생처럼 따스한 사람이 그리운 계절이고 보니, 이 시를 짓던 해 그 온화했던 봄바람이 불현듯 아득한 전설처럼 그리워진다.

祝景信詩稿發刊(축경신시고발간)

紛紛世態道何明(분분세태도하명)
景信存心獨樂生(경신존심독락생)
出入無分承聖訓(출입무분승성훈)
初終有節斥虛名(초종유절척허명)
行仁醫術如陽暖(행인의술여양난)
勸德詩文似玉淸(권덕시문사옥청)
追遠報恩情不改(추원보은정불개)
推知萬代子孫榮(추지만대자손영)

경신시고의 발간을 축하하며

어지러운 세태, 도 어찌 밝을 것인가
경신께서는 본심 지키며 홀로 삶을 즐기셨다네
들며 나며 한결같이 성인의 가르침 받들고
시종 절개 있으시어 헛된 명리는 물리치셨던 분!
인을 행하신 의술은 햇살처럼 따뜻하였을 터,
덕을 권하는 시문은 옥과 같이 맑네
추원보은의 정 고치지 않았음에
만세토록 자손들 영달할 것임을 알 수 있겠네

오늘 소개한 경신 선생의 시는 칠언율시로 압운자가 ‘淸(청)’, ‘城(성)’, ‘生(생)’, ‘晴(청)’, ‘名(명)’이다.

2023. 12. 25.<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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