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포기·3시간 일찍 출근"…쌓인 눈에 한숨짓는 이동약자들

장애인 콜택시 부족에…"15분이면 갈 거리를 아침 7시부터 기다려"
특별교통수단 예산 271억원 증액안 무산…"이동수단 보장 높여야"
무릎 통증으로 평소 전동스쿠터를 자주 이용하는 박모(84)씨는 지난 20일 동네 노인복지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먹을 것도 주고 이것저것 보여준다기에 행사날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내린 눈에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할까 봐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동스쿠터는 박씨처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보다 자유로운 이동을 돕지만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박씨는 "매번 자식들을 부를 수도 없는 일이지 않느냐"며 "병원에 가거나 해야 할 땐 자식들이 택시를 불러주는데 별것 아닌 일로 부탁하기도 미안해 웬만하면 집에 있으려고 한다"고 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휠체어 장애인인 강미선(63) 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은 "이번 주 눈이 온 뒤로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눈이 내린 미끄러운 길을 평소처럼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없어서다.

강 부소장은 "요즘처럼 춥고 궂은 날씨엔 '장애인 콜택시'가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럴 땐 타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시간이 평소보다 배 이상 늘어난다"고 전했다.

그는 "눈이 왔다고 출근을 안 하거나 지각할 수는 없으니 새벽부터 콜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다"며 "콜택시가 호출 5분 만에 오기도, 3시간 뒤에 오기도 하니 휠체어로 15분이면 갈 거리를 가려 아침 7시부터 택시를 기다린다"고 토로했다.
콜택시 대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박씨와 강 부소장 같은 고령층과 휠체어 장애인 등 이동 약자는 궂은 날씨에 집에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의 이동조차 쉽지 않다.

휠체어 장애인의 경우 힘겹게 역이나 정류장까지 이동했다 하더라도 승객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휠체어를 이끌고 버스나 지하철에 올라타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안이 되는 교통수단은 택시이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인 고령층은 택시를 집 앞까지 부르는 데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휠체어 장애인은 일반 택시는 이용할 수 없어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강 부소장은 "장애인 콜택시는 일반 택시보다 저렴한 게 사실이지만 저를 포함한 일부 장애인은 제값을 주더라도 내가 원할 때,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택시가 있었으면 한다"며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일반 택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 포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서울 지역에 눈이 내린 평균 일수는 25.1일, 강수일수는 107.3일로 둘을 합치면 3일에 하루꼴이다.

폭염이나 한파가 있는 날까지 더하면 1년에 40% 이상 이동에 불편을 겪는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상버스는 보급률이 30%밖에 되지 않고 장애인 콜택시도 차량 수가 충분하지 않아 이용자들이 많이 기다려야 한다"며 장애인 콜택시 등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수단의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등이 이용하는 '바우처 택시'의 대상을 거동이 불편한 노인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조 교수는 또 "미국은 자기 집 앞에 쌓인 눈이 얼기 전에 치우지 않으면 과태료를 낸다"며 "적어도 모두가 자기 집 앞 눈만이라도 제때 잘 치운다면 교통약자들의 이동이 좀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장애인 콜택시 등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예산을 271억원 증액해 반영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전날 국회에서 통과된 예산안에는 9억7천여만원 증액분만 반영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