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는 러시아에 공연갈 때 와인만 120병을 챙겼다

[arte]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그저 불행하기만 했던 나를 왜 이렇게도 고통스럽게 하는가!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하세. 형제여 자비를 베풀어주게!’

이렇게 알바로는 수도사로 은둔해 있다가 자신을 끝끝내 찾아온, 자신이 죽인 남자의 아들이자 연인의 오빠에게 슬프고도 처절하게 외친다. 알바로의 저 처절한 외침은 오페라 <운명의 힘>을 떠오르면 생각나는 주요한 선율이다. 어쩌면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운명’에 관련된 선율을 떠올려 보자고 하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주제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선율이다.
운명의 힘 포스터
어렸을 적 영화를 보려면 극장을 가거나 저녁에 KBS에서 방영하던 명화극장 봐야했다. 특히 이 옛날 TV프로그램에서는 대서사시를 가진 긴 해외 장편영화들을 많이 보여 주었었다. 온가족이 같이 보게 되기에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에 그 영화의 내용을 이해는 못하여도 더빙되어 나오는 외화들을 접하였고 그 화면 속 세계에, 작품들에 빠져들었었다.

그렇게 접하였던, 그 음악과 화면 속 프랑스 남부의 모습에 기억에 남는 영화 <마농의 샘>. 인간의 탐욕과 욕심 그리고 복수에서 오는 3대에 걸친 비극을 이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프로방스지방의 풍경속에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영화곳곳에서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과 반대로 아름답지만 깊은 슬픔과 고독을 간직한 음악이 하모니카로 연주된다. 바로 <운명의 힘>의 알바로가 부르는 그 선율이다. 이 선율을 그렇게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고 또한 정해져 있는 운명으로 이끈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이 그려내는 세상의 그 쓰디쓴 비극도 다르지 않다.
이미 원숙기에 들어선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화여 무엇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그의 이전의 작품들, 특히 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의 시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룬 작품들과는 다른 방향이다. 그 전의 작품들은 각 인물들이 서로서로 계속 만나가며 그 갈등을 쌓아갔다고 하면 이 작품은 매우 정적으로 그 갈등을 등장인물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 가며 쌓아간다. 그래서 속도감과 주인공들의 만남이 많아 무대에서의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는 장면들보다 주인공들이 홀로 극 속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극 속의 시간을 살아가는 모습이 많다. 마치 옴니버스 드라마와도 같다. 그 내용 또한 어둡고 무거워 이 어두운 운명속의 주인공들은 이전작품들과 달리 드라마틱 테너, 드라마틱 소프라노 그리고 깊은 베이스(Basso Profondo)가 노래한다. 그러한 이유들로 베르디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의 이전 작품들 보다 회화적으로 다가오고 더욱더 극적인 드라마를 추구했다. 베르디는 오페라 '가면 무도회' 이후 잠시 쉬고 있을 때 러시아 황실로부터 오페라 의뢰를 받았다. 예전에 쓴 칼럼에서 베르디의 미식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에밀리아-로마냐의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에 대하여 이야기했었다. 또한 그가 연주여행때 챙기는 꼭 자신이 선호하는 특별 리조토 재료와 레시피가 있었다고 언급했었다. 1회 참고 링크

베르디가 '운명의 힘'의 1862년 초연을 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먼 여행길에 남은 기록들에 베르디의 음식사랑이 잘 들어 난다. 그는 그 여행길에 자신이 좋아하는 샴페인 20병과 보르도와인 120병을가져갔으며 러시아에서 지낼곳의 셰프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리조토 재료와 레시피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 리조토의 레시피는 그가 1896년 9월 아내 주셉피나가 파리 오페라 하우스 극장장인 카미유 뒤 로클(Camille du Locle)에게 보낼 편지에 자세히 적어주었다.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의 공동설립자이자 초대교수를 지낸 현대 프랑스요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앙리-폴 펠라프라 Henri-Paul Pellaprat(1869-1952)는 후에 베르디의 이 리조토 레시피를 발전시켜서 베르디에게 헌정하는 베르디 스타일 리조토 (Risotto alla Giuseppe Verdi)를 만들었다.브람스와 베토벤의 마지막의 시간은 그들이 사랑했던 라인가우지역의 리즐링 와인이였는데 평생 음식과 와인에 대해 진심이었던 이 이탈리아 작곡가의 마지막은 무엇이었을까? 아내 주셉피나가 사망하고 4년 후에 사망한 그의 마지막 시간의 저녁메뉴들로는 야채스프와 구운송어, 소고기 안심요리와 아스파라거스, 어린 칠면조 꼬치구이, 딸기 젤라토 등등이 전해진다.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로는 끝까지 진정한 미식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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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휘자 지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