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DA에 가면 소식을 알려줘요… 앞으로 뜰 그림이 어떤 건지

[arte] 이한빛의 아메리칸 아트 살롱
북미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23은 ‘올디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회화(첫 번째)와 제프쿤스의 깨진 달걀(두 번째) 을 대표작으로 내건 가고시안 갤러리 [사진=이한빛]

우리는 왜 아트페어에 갈까

아트페어의 최고 덕목이 무엇일까요? 유명 갤러리가 참여한다는 것? 모르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글쎄요. 저의 생각은 ‘한자리에 모여있다’는 것입니다. 괜히 ‘미술장터’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라면 도시의 이곳 저곳, 크게는 지구촌 이곳 저곳에 흩어져있는 갤러리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가게(부스)를 여는 겁니다.소비자(컬렉터)입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가 좋습니다. 비교가 용이하고 시장의 흐름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아트페어가 열리면 주변의 컬렉터는 물론 전세계 컬렉터, 화랑관계자, 딜러, 어드바이저가 모여듭니다. 이뿐만일까요? 큐레이터, 미술관 관장, 기자, 디렉터, 감정사 등 미술 관계자들도 아트페어 주요 고객들입니다.

미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중 가장 큰 행사는 단연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Art Basel Miami Beach·ABMB)입니다. 12월 첫 주에 열리는 이 행사는 북미지역 컬렉터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 컬렉터들에게도 주요한 행사로 꼽힙니다. 올해도 5일간 7만 9000여명이 찾았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6월 아트바젤 인 바젤(Art Basel in Basel)과 9월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Paris+ par Art Basel) 이후 잠시 텀을 두고 열리는데다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 열리죠. 게다가 12월 유럽은 겨울이 한창이지만,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마이애미는 휴가차 아트페어 방문을 고려하게 하는 주요 요소입니다.
NADA Miami 2023 정원 풍경. 150개 부스를 돌고나면 휴식이 간절해진다. 해먹에 앉아 피자와 샴페인으로 허기를 달래다보면 ‘이곳이 플로리다’라는 감탄이 절로 난다. [사진=이한빛]
ABMB는 미국 갤러리의 비율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최근 파리가 (파리 + 파 아트바젤 이후) 다시 글로벌 아트 캐피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술시장의 중심은 미국입니다.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사 UBS가 매년 발행하는 미술시장 보고서 ‘아트 마켓 2023’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678억달러(약 89조원), 그 중 미국은 45%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위는 영국(18%), 3위는 중국(17%)이나, 미국의 현 시장규모는 2위와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입니다. ‘넘사벽’ 시장의 주요 갤러리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미술계의 눈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ABMB가 열리는 기간 (당연하게도) 마이애미는 미술계 행사로 물듭니다. 2002년, 아트바젤이 마이애미비치를 개최지로 낙점한 이래,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는 더 이상 낙후된 곳이 아닌 아트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습니다. 사립 재단(미술관)들은 가장 자신 있는 프로그램을 피칭하고, 시내 곳곳에 팝업행사가 열립니다. 마이애미 비치 쪽 식당가와 클럽은 연이은 프라이빗 파티로 저녁마다 교통체증이 심각합니다. (지역 신문에서는 아트위크기간 교통체증 피하는 법을 기사로 실을 정도입니다)

위성 페어들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방문객들은 ABMB를 최우선으로 찾지만, 동시에 열리는 아트 마이애미, 언리미티드, 스코프 등 서브 아트페어도 발길을 돌립니다. 그리고 구매 구력이 좀 붙은 컬렉터들과 시장의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딜러, 갤러리스트, 어드바이저, 컨설턴트 등 이른바 ‘고수’들이 꼭 찾는 페어가 있습니다. 바로 나다(NADA). New Art Dealers Alliance에서 개최하는 아트페어입니다.
북미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23은 ‘올디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회화(첫 번째)와 제프쿤스의 깨진 달걀(두 번째) 을 대표작으로 내건 가고시안 갤러리 [사진=이한빛]
북미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 2023은 ‘올디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회화(첫 번째)와 제프쿤스의 깨진 달걀(두 번째) 을 대표작으로 내건 가고시안 갤러리 [사진=이한빛]

‘올디의 귀환’ 외친 ABMB

컬렉터 입장에서 보면 사실 아트페어에 꼭 가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갤러리들이 ‘프리(pre)세일’이라고 페어에 들고 나갈 작품을 미리 판매하니까요. 굳이 장거리 비행시간을 견뎌가며 행사장에 가지 않아도 원하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 갤러리들이 페어 전시작 중 절반 정도를 미리 (기존 고객들에게) 팔고 나옵니다. '집토끼'가 갤러리 입장에선 너무 중요하기에 우선권을 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트페어를 찾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흐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유명작가의 신작을 보는 재미도 있고, 신진작가를 만나는 재미도 있지요.

올해 ABMB는 ‘올디(Oldie)의 귀환’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시장을 지배하던 아프리칸-아메리칸 작가, 페미니스트 작가에 대한 주목이 이전보다는 살짝 줄어들었고, 구상화에 대한 환호가 감소한 가운데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중요하게 조명한 갤러리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톱 갤러리로 꼽히는 가고시안은 대표 작품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1000만달러)와 제프 쿤스의 '깨진 달걀'(500만달러)을 걸었습니다. 하우저앤 워스는 필립 구스통의 ‘밤의 화가’를 2000만달러(약 264억원)에, 조지 콘도의 ‘웃는 귀족’을 240만 달러에 판매했습니다. 최고가 세일즈는 야레스 아트에 돌아갔습니다. 프랭크 스텔라의 1958년 검은 추상 회화 '델타'를 4500만달러(약 600억원)판매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흐름을 읽는다’는 말의 동의어는 ‘다음 트렌드를 짐작한다’입니다. 안목이 있는 그리고 부지런한(!) 컬렉터와 딜러들은 그래서 위성페어를 샅샅이 살펴봅니다. 주식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자들이 상장가능성이 있는 비상장 주식을 구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NADA는 이 선봉에 서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NADA를 ‘(마이애미) 비치에서 떨어진 오아시스’ (https://www.wsj.com/arts-culture/fine-art/nada-miami-2023-review-an-oasis-away-from-the-beach-airdigital-8f924e9c?mod=Searchresults_pos1&page=1)라고 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10년 가까이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한 갤러리스트는 필자에게 “마이애미 가면 무조건 NADA에 들러서 작품을 하나 사라. 앞으로 뜰 작가들만 모여있다”고 조언합니다. 원석들이 모여 있으니, 잘 고르면 후에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가 열리는 기간 위성페어도 동시에 여럿 열린다. 그중 NADA는 2003년부터 마이애미를 지킨 터주대감이다. 아트바젤의 비싼 부스비를 감당할 수 없지만 프로그램은 좋은 신진 갤러리들이 ‘대안’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것이 이제는 ‘must see’ 페어로 자리잡았다. [사진=이한빛]

비상장 주식 같은, 고수들을 위한 아트페어 NADA

올해 NADA는 마이애미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아이스 팰리스 필름 스튜디오에서 열렸습니다. 산후안, 파리, 시카고, 멤피스 등 전세계 50개 도시에 기반한 150개 갤러리/비영리 단체가 참여했고, 이중 NADA 회원이 85개, 처음 참가한 곳이 34개입니다. 올해로 21번째 행사이니, ABMB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이애미의 터줏대감입니다.

ABMB가 열리기 하루 전인 5일 오전 10시부터 VIP를 맞이한 NADA는 시작과 동시에 방문객이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섰고, 갤러리들의 세일즈도 좋았습니다. 가격대가 5만달러 이하로 (상대적으로!) 저렴하기에, 실 구매자들이 몰린 것입니다. 아트넷에서도 ‘오프닝부터 솔드아웃 부스 출현, 세일즈 막강’ (https://news.artnet.com/market/nada-miami-starts-strong-with-multiple-sold-out-booths-on-opening-night-2404140)하다며 경쟁적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언론과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 갤러리는 슈퍼 다코다(Super Dakota), 폴리나 베를린(Polina Berlin), 선데이 페인터(Sunday Painter), 쏘리 위 아 클로우즈드(Sorry we’re closed), 디민(Dimin) 등입니다. 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폴리나 베를린 갤러리는 지난해에 오픈한 갤러리로, 올해 처음으로 NADA에 나왔지만, 들고나온 타모 주제리(Tamo Jugeli)와 캐리 러드(Carrie Rudd)의 추상회화 12점(각 6점)을 솔드아웃 시켰습니다.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러드의 작업은 재스퍼 존슨과 로버트 라이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3차원적으로 구현된 아름다운 복잡함”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작품가는 4200달러에서 1만2500달러 사이)
토마스 하커의 작품을 내 건 선데이 페인터 갤러리 [사진=이한빛]
런던에 기반한 선데이 페인터는 Z세대 작가인 토마스 하커(Tomas Haker)의 작업을 선보였는데, 영국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티타임을 위한 티테이블을 빠른 필치로 그려낸 것이 인상적입니다. 티타임에 쓰이는 찻잔이나 차주전자를 로열 블루와 블러디 레드로만 표현하고, 묘사한 도자의 장식에 찰스 왕세자, 다이애나 세자비 등 익숙한 얼굴이 비칩니다. 갤러리측은 “영국적 코미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외에도 뉴욕 딜러인 디민이 선보인 에릭 달젠(Erik Dalzen)의 조각(2만달러), 예 친 추(Ye Qin Zhu)의 혼합재료 나무조각(8000달러)은 개인 컬렉터에게 개막 첫 날 팔렸고, 레이첼 우프너(Rachel Uffner)가 피칭한 마이애미 출신 작가 버나뎃 데스푸졸(Bernadette Despujols)의 페인팅 석 점(5만6천달러, 5만달러, 2만달러)도 오픈과 동시에 팔려나갔습니다.

오픈 첫 날 전시장에서 만난 컬렉터들은 경쟁적 구매 분위기 때문인지 대부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LA에서 왔다는 올리비아는 “NADA는 수 차례 왔는데, 올 때마다 좋은 작가들이 많다. 사이즈가 작은 작품들은 가격도 괜찮아서 보면 바로 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에서 온 중년의 컬렉터 슈나우테판은 “조금 전에 두 점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오픈 때 오지 않으면 좋은 작품은 다 나가고 없다”며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이제 정원에 있는 해먹에서 샴페인과 피자를 즐길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더스틴 에모리(Dustin Emory)의 질감이 독특한 회화를 내건 프라이머리 갤러리 [사진=이한빛]
전시장을 돌다 보니 현금으로 바로 구매하는 컬렉터도 보였고, 손님과 함께 미리 찍어놓은 갤러리를 순회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어드바이저들도 꽤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수첩에 작가 이름과 갤러리 이름을 적어가며 리스트업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고, 메가 갤러리 디렉터들 몇 명도 만날 수 있었죠. 시장 리서치 차원에서 들른 것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한 메가 갤러리 디렉터는 “NADA에서 신진 작가들을 많이 발굴한다”고 말했습니다. 메인 섹터인 ‘갤러리즈’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부스와 비영리 기관 부스도 다 돌아본다면서요. NADA는 딜러들이 모인 느슨한 협회 형태의 비영리 조직입니다. ‘뉴 아트 딜러’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신생갤러리들의 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가 점점 성장한 케이스입니다. 매년 봄엔 뉴욕에서 겨울엔 마이애미에서 페어를 개최하고, 2021년엔 뉴욕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전시장도 마련했습니다. 대담과 작가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고요.

설명만 들으면 한국의 화랑협회와 크게 다를바 없을 수 있으나, ‘이익집단’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차이점을 만들어냅니다. NADA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큰 갤러리, 작은 갤러리, 비영리 단체에 이르기까지 예술계의 다양한 참여자들 간 건설적 생각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지지와 격려를 통해 현대미술과 새로운 현대미술을 다루는 구성원들간에 강력한 ‘관계’(동맹)을 형성하고, 대중과 상호작용을 강화한다” 고 말이죠. 어쩌면 미술계 고수들은 이 같은 초심에 담긴 진심을 알아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냥 듣기 좋은 말일 뿐이라 할지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