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고향 삼킨 전쟁에 침울한 지구촌 성탄절…테러위협·시위도

교황 "정의는 힘 과시로는 안 돼" 평화 촉구…베들레헴 기념행사 처음 취소
가자지구·우크라서 피의 전쟁 계속…유럽 곳곳 보안 강화
지구촌이 전쟁의 고통과 테러 위협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세계인들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을 맞았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절 전야인 이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예수의 땅인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전쟁을 애통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배에 참석한 6천500여명의 신자 앞에서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은 평화의 왕이 헛된 전쟁 논리에 의해 다시 한번 거부당하는 베들레헴에 있다"며 "오늘날에도 그분은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정의가 '힘의 과시'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예수님은 힘의 과시를 통해 위에서부터 불의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아래서부터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불의를 없애신다"면서 평화를 호소했다.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요르단강 서안 도시 베들레헴은 성탄절 연휴가 되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올해는 유령도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인파가 끊겼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여파로 성직자들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기념행사 대신 촛불을 켜고 찬송가를 부르며 가자지구의 평화를 기원하는 성탄 철야 기도회를 열었다.
이스라엘군은 성탄절에 공격 강도를 더욱 높였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이 알 마가지 난민캠프를 파괴해 최소 7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이스라엘 군인도 이틀 사이에 15명이 숨졌다.

이집트에서 휴전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는 전쟁으로 매우 큰 대가를 치르고 있음에도 계속 싸우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면서 전쟁을 쉽게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전쟁이 시작된 후 두 번째 성탄절을 맞은 우크라이나에서도 포성이 지속됐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는 러시아 포격으로 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으며 주택과 의료시설, 가스관 등이 파괴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하르키우 지역의 20개 마을에도 포격을 가했고, 미콜라이우, 키로보흐라드,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흐멜니츠키, 자포리자 지역도 드론으로 공격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결국 어둠은 질 것이고, 악은 패배할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거듭 다졌다.
유럽 곳곳은 테러 공포로 크리스마스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

독일 경찰은 이슬람 단체들이 크리스마스이브나 올해 마지막 날에 관광명소인 쾰른 대성당을 공격할 것이라는 '위험 경고'를 접수하고 23일 성당 수색에 나선 데 이어 24일에는 성당의 모든 예배 방문객을 상대로 보안 검색을 실시했다.

관광객은 성당 출입이 금지됐다.

프랑스 내무부도 경찰에 "크리스마스 축제에 모일 기독교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의 교회에서 존재감을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경찰도 "연휴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위험이 증가했기 때문에 기독교 행사에서 보안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테러 위협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달 초 윌바 요한손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공격 위험'이 있다고 밝혔고,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도 최근 유럽에서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하마스 조직원 등을 체포한 바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14명이 사망한 체코 프라하 카렐대 총기 난사 사건을 모방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경찰이 한때 긴장했다.

응급구조대에 전화해 "프라하에서 일어난 일을 하기 위해 총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한 60대 남성은 경찰에 체포됐다.

체코 프라하에서는 "한 남자가 수류탄을 들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트램 운행이 중단되고 지하철이 무정차 운행을 하는 등 교통에 차질이 빚어졌다.

프라하 공항에서는 영어를 쓰는 남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공항에 폭탄 5개가 설치돼 있다"고 말한 후 승객 대피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규탄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시위를 벌였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셧다운' 집회 주최 측은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어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쇼핑일인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중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학살 속에서 평소와 같은 크리스마스는 없다"고 외쳤다. 시카고에서는 시위대 차량 행렬이 고속도로와 오헤어 공항 입구를 일시적으로 막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