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약물결합체, 글로벌 거래 130조 돌파…관심 터진 이유[이해진의 글로벌바이오]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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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1월 말 기준 항체-약물결합체(ADC) 기술 거래(인수·합병(M&A) 포함) 규모가 900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2월 들어 거래는 더욱 활발해졌는데요. 그 규모가 1000억달러, 원화로 130조원을 훌쩍 넘겨버렸습니다. 성사된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면 화이자가 씨젠을 M&A한 규모가 430억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국 머크는 씨젠 인수에 실패했지만, 다이이치산교와 총 220억달러의 ADC 기술 협력관계를 맺었는데,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만 60억달러 수준에 이릅니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2023년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파드세브'(아스텔라스와 씨젠이 개발한 ADC 치료제)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당시 요로상피암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3상에서 전체생존중간값(mOS)을 표준요법 대비 2배 늘렸단 내용이 공개되면서 머크는 기립박수를 받았는데요. 머크는 이 시점에 ADC 기술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한 달 남짓한 시점에 빅파마(글로벌 대형 제약사) 앱비도 '이뮤노젠' 인수를 통해 ADC 약물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빅파마들이 너나할 것 없이 ADC 기술을 확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도 ADC는 가장 큰 화두였는데요. ADC 블록버스터 '엔허투'(다이이치산교와 아스트라제테카가 개발한 ADC치료제)의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항체-링커 플랫폼의 재발견 때문입니다.

항체의약품은 기존의 화학의약품 대비 치료 효과도 좋으면서 부작용도 적습니다. 이는 항체가 특정 항원과만 결합하기 때문입니다. A라는 항원에는 반드시 A'라는 항체만이 결합하는 식인 거죠. 그런데 최근 항체를 전달체로 이용하려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엔허투'의 성공 이후 다양한 항체에 다양한 약물을 결합해 환자에 투여하면 원하는 곳으로 약물을 보낼 수 있어 보다 강력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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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항체의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는 항체-링커 플랫폼의 다양한 응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해당 플랫폼을 활용하면 전달체로 항체뿐만 아니라 이중항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빅파마 비엠에스(BMS)는 미국 소재 중국계 바이오 기업 '시스트이뮨'과 최대 84억달러의 ADC 개발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시스트이뮨은 계열 내 최초의 'EGFR*HER3'(이중항체)와 제3세대 페이로드(세포독성 약물)를 적용한 ADC 물질인 'BL-B01D1'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항원을 타깃할 수 있어 단일 항체 대비 치료 효과가 더 좋을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이중항체의 치료 효과가 더 좋다면 이중항체의 가치는 더욱 확장될 수 있겠죠.다음으로 페이로드 즉, 약물의 다양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ADC에서 약물은 암세포를 파괴하는 기능을 하는데,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암세포의 미세소관(세포모양을 유지하는 골격구조)의 성장을 교란하는 튜블린 억제제와 암세포의 DNA를 손상시키는 피롤로벤조디아제핀(PBD), 데룩스테칸(Dxd) 약물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단백질분해제(TPD)가 새로운 ADC의 약물로 개발되는가 하면 방사성물질을 항체에 연결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머크는 보유하고 있는 ADC 기술과 바이오텍 'C4 테라퓨틱스'의 TPD 기술을 결합해 분해제-항체 접합체(DAC)를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내 기업 동아에스티도 ADC 전문기업 앱티스(AbTis)를 인수해 항체에 방사성의약품을 결합한 항체방사선물질접합체(ARC), 단백질분해제를 결합한 항체표적단백질분해제접합체(APC), 면역증가물질을 결합한 항체면역자극항체접합체(ISAC) 플랫폼 등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처럼 ADC의 항체-링커 플랫폼은 약물을 정확히 전달하는 전달체로서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2023년 비만치료제와 더불어 바이오 업계에 큰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ADC를 단순한 바이오 기술 중 하나로 본다면 성장은 단기에 그칠 수 있으나 다양한 약물을 적소에 전달하는 약물전달시스템(DDS)으로 새롭게 인식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DDS는 바이오 산업에서 그동안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ADC의 성장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기업 중 레고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ADC의 일종인 방사성치료제를 개발하는 퓨쳐켐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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