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충격에도 다시 일어선다" <제인 에어>에서 엿보는 회복탄력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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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경제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고금리와 높은 물가 속에서 많은 이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에게 희망을 줄 인물을 찾는데, 문득 <제인 에어>가 생각났다.
<제인 에어>의 저자 샤롯 브론테는 병마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그녀의 분신인 제인 에어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샤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처럼 거대한 이기심과 부패 덩어리인 세상과 맨몸으로 대결해서 자신의 도덕성과 소신을 지켜내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제인 에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함의는 무언지 생각해 본다. 제인이 온갖 역경에 맞서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가치관을 유지하며, 삶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는 여성이란 점은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제인 에어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해 본다. 제인은 어린 시절 고아가 된 후에는 후견인인 숙모 리드 부인과 못된 사촌들의 괴롭힘을 받는다. 10살 제인은 더부살이를 하며 온갖 굴욕을 견뎌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더부살이하던 외숙모의 집안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여기에 리드부인의 아들이자 제인의 사촌인 존은 제인을 괴롭히고 때리기까지 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는 가부장적 인물의 전형이었다. 결국 그녀는 탈출구로 학교를 선택한다. 학교에 가면 모든 것이 변하리라는 긍정적 믿음을 가지면서. 로우드 기숙사 학교는 혹독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다루며 빅토리아 시대의 순종적인 ‘가정의 천사’를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제인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을 원했기에 이리저리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 후 8년간 학교의 억압적 환경에서 인내하는 삶을 배웠으나 변화와 자극을 달라고 기도했다. 제인은 제도와 규칙에 치우친 학교를 넘어서 더 큰 세계로 나가 지적인 성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다.로우드를 떠나 온 제인은 쏜필드에서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다. 그곳의 삶 역시 제인이 추구하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쏜필드의 주인 로체스터는 제인의 솔직함에 매료되나 두 사람의 관계는 평등하지 못했다. ‘주인’과 ‘가정교사’라는 종적인 관계 때문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어려움에 봉착하고 성적으로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됐다. 이러한 억압적인 상황에서도 제인은 자기 긍정성을 잃지 않았다.
새해 첫 메시지는 자기 긍정성이다. 경제도 인간의 삶에도 자기긍정성이 중요하다. 자기긍정성은 선순환을 통해 모든 면에서 강한 회복탄력성을 갖게 해준다. 제인 에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백처럼 말하곤 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지. 고독하고 벗도 없고 의지할 데가 없을수록 더욱 더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이러한 자세는 일방적 희생이나 이기심을 넘어서 진정한 주체성을 발현하는 태도이다. 이런 그녀의 태도는 쏜필드에서 로체스터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가난하고 신분이 낮고, 작고 못생겼다고 해서 영혼도 없고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제 영혼이 당신 영혼을 향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우리가 동등하기는 하지만 마치 우리 두 사람이 무덤을 지나서 하나님의 발 아래 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거예요.”
확실히 로체스터를 향해 야멸차게 반항하는 제인의 모습은 빅토리아 시대의 순종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내세울 것 없는 가정교사가 짝사랑하는 집주인에게 이런 당돌한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자기애가 강한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긴 제인은 로우드 기숙사에서 쏜필드의 가정교사로 갈 것을 결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구절은 우리 경제가 마주할 새해 메시지와도 갔다.
‘새로운 고생살이, 거기엔 무엇인가가 있어.’
그녀의 독백은 어떠한 역경에도 맞서겠다는 비장함과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강한 삶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단호한 현실 수용의 자세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과 유례없는 금리인상 속도. 경제와 서민 생활 위기가 끔찍하다. 그 충격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위기를 만들지 모르는 소용돌이 속에 있다.
세계적 경제석학이자 프린스턴 대 교수인 마커스 브루너마이어는 <회복탄력 사회>에서 제인 같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성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새해 우리 경제의 화두는 그의 말처럼 복합위기의 시대에 ‘회복탄력 사회’라는 처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회복탄력성은 충격 이후에 다시 일어서는 능력을 말한다.
마커스 교수는 우리가 그간 위기를 막아낼 ‘견고성’에 집착한 것에 반대한다. 그의 ‘떡갈나무와 갈대’ 비유를 통해 이를 제대로 들여다보자. 견고함의 대명사인 떡갈나무는 웬만한 비바람이나 강풍도 견뎌낸다. 정작 태풍 같은 거센 충격에 직면하면 부러진다. 갈대는 어떤가?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태풍이 불어도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속성이 있다. 떡갈나무의 견고성보다는 갈대의 회복탄력성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갈대 같은 원상 복귀 능력을 중시할 때 우리는 삶과 경제의 ‘안정성’ 이상을 생각하게 된다. 안정성은 주로 일상적이고 사소한 충격에 국한되는 반면, 회복탄력성은 견고성의 벽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도 받아들인다. 때로는 위기를 아예 회피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위기를 감내하는 편이 낫다.
위기는 평소에 필요하던 조정을 실행에 옮길 기회이기 때문이다. 조정이 없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불균형이 누적되고 그만큼 위기는 더 심각해진다. 그 반면에 소소한 위기에도 회복탄력성이 좋다면 사회는 한층 강화되고 튼튼해진다. 이런 현상을 ‘변동성 역설’이라고 일컫는다. 삶과 경제는 어쩌면 변동성이 매우 낮은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때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란 것이다.
회복탄력성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위기가 오면 효율성이 희생될 수 있다. 그 동안 기업이나 국가 경영, 국제무역 영역에서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적기대응 전략이 중요했다. 이제는 위기의 상시화에 맞서야 한다. 각종 지정학적 갈등과 같은 불확실성 심화는 비상대응 전략의 상시화를 요구한다. 단기적으로 비용편익 측면에서 부담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기업이나 사회나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장기적 유연성이나 회복탄력성에 더 중점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구조가 한창이다. 문득 양상은 다르나 소설에서 제국주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제국주의는 소설 <제인 에어>의 잠재적인 비난 대상이다.
우선 식민지에 대한 난폭한 정복자의 모습은 남주인공이자 제인과 결혼하는 로체스터에게서 나타난다. 그는 차남으로서 아버지의 유산 상속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식민지는 일차적으로 그에게 부를 제공하는 대상, 곧 기회의 땅으로서 아주 매력적인 존재이다.
실제로 그의 첫 번째 아내였던 버싸는 식민지의 지배 계층이다. 버싸를 처음 보았을 때 로체스터도 그녀의 이런 점에 끌렸다. 식민지와 동일시되는 버싸는 영국인과 대척점에 있다. 그녀는 순결한 영국인과는 분리되어야 했다. 이 때문에 버싸는 미친 여자로 표현된다. 버싸가 로체스터의 저택 꼭대기 다락방에 있는 것은 식민지에 대해 제국의 지배자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한다.
<제인 에어>에서 제국주의와 여성의 관계는 비유적으로 나타난다. 작가나 여주인공이 여성 차별을 문제시하는 가운데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가능했다. 샤롯 브론테의 제국주의 비판의 또 다른 측면은 제인이 영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억압이 인도나 서인도제도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을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된다.
<제인 에어>는 식민지 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남성과 그 반대로 불평등과 억압을 느끼는 여성의 시각을 보여 준다. 로체스터와 비교해 사회적인 지위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무력한 제인이 숙부의 유산을 상속받는 것은 평등한 남녀관계를 위해서는 심리적 독립과 아울러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페미니즘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일국의 경제는 이제 더는 고립적일 수 없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현 시대에도 세계경제에서 제국주의의 모습은 여전하다.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많은 나라들은 줄서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제인 에어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그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뻗어나가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제인 에어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녀의 말이 제국주의의 침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많은 국가들의 열망을 담고 있는듯하다.
“나는 자유를 원했다. 자유를 갈망했다. 나는 자유를 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기도의 말은 바로 그때 불어 온 미풍에 부딪혀 흩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기도를 그만두고 나는 좀 더 겸손하게 애원했다. 변화와 자극을 달라고 기원했다. 그 탄원마저도 막연한 공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게 새로운 고생살이를 하도록 해주소서.” 새해 희망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제인 에어가 결혼하고 10년이 된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본다. 제인 에어는 지난 시간의 모든 부정적인 것을 잊고 삶에 감사하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그 사람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사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