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온정의 손길로 화룡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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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다사다난했던 계묘년(癸卯年)이 저물어간다. 돌이켜보면 2023년은 기대가 컸던 한 해였다. 물론 대내외적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온전한 일상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재난에 세계적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그래도 온정의 손길이 만든 작은 희망의 새싹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초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튀르키예 강진으로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형제의 나라의 아픔에 많은 국민이 성금을 보내줬다. 이를 통해 건설된 우정의 마을에는 임시주택 1000채와 교육, 의료, 커뮤니티 시설 등 생활편의시설도 건설돼 2700여 명의 이재민이 편안하게 거주하고 있다.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줘 고맙다는 현지 주민들의 인사를 들었을 땐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과거 많은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받던 나라가 어려운 나라를 돕는 선진국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기도 했다.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가 몇 명 없는 극희소질환(포토키룹스키)을 진단받았지만 치료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두 살 아이는 지난 5월부터 각지에서 쏟아진 국민 후원금 덕에 필요한 치료를 받고 있다. 아이의 어머니는 치료가 진행되면서 혼자 걸을 수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던 무호흡 경련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작은 정성들이 모여 만든 변화의 힘이었다.
지난 10월에는 전국 최초로 전라북도에서 ‘전북 도민 헌혈의 날’이 선포됐다.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기업 및 단체,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열린 헌혈 릴레이에는 목표한 7000명을 뛰어넘는 7530명이 참여했다. 혈액 수급에 숨통이 트인 계기였다.
진정한 선진국은 국민소득이나 경제 순위가 높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기부하고 헌신하는 봉사 수준이 높아야 세계인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올 한 해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국제적으로 최상위권 적십자로 인정받도록 도움을 준 기부자, 봉사자, 헌혈자, 청소년적십자 단원 등 800만 적십자 가족과 모든 국민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다가올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다. <트렌드 코리아>의 대표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갑진년의 키워드로 ‘용의 눈’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자원난, 무역장벽, 전쟁 등의 어려움 속에서 청룡을 타고 비상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의 손길, 화룡점정이 더해져야 하는 법이다. 모쪼록 이웃을 보듬는 온정의 손길이 내년에도 이어져 아프고 힘겨운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