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60점으로 습지 만들면서 1점만 비워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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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2
이광호 'Blow-up'展그림은 아무리 현실 같아도 그림일 뿐이다. 화가가 만들어낸 그림 속 세상은 테두리라는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사실주의 중견 작가인 이광호(이화여대 교수·사진)는 그 벽을 허물고 싶었다. 그래서 60점의 그림을 가로 12m가 넘는 거대한 벽면에 퍼즐처럼 이어 붙여 습지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작업을 마치고는 맨 위쪽 가장자리에 있는 그림 딱 한 점을 떼어냈다.
"다 채우기보단 텅 빈 곳 보면서
원래 풍경을 상상해보길 바라"
“관람객들은 그림을 떼어낸 빈자리를 바라보며 원래 있었을 풍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림에 그려진 장면 밖의 세계, 습지 근처의 자연 풍경까지 상상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그림의 범위를 테두리 너머로 확장하고 싶었습니다.”떼어낸 그림의 모습을 궁금해할 관객들을 위해 해당 그림을 좀 더 크게 다시 그린 뒤 맞은편 벽에 걸었다.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광호의 개인전은 이렇게 ‘그림의 본질’이라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장르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구상화인지 추상화인지가 결정돼서다. 벽면 풍경을 구성하는 59점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구상화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추상화다.
이 작가는 “뉴질랜드의 케플러 트랙이라는 습지에 놀러 갔다가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그렸는데, 실제 습지는 그림보다 훨씬 더 작다”며 “실제 풍경을 그렸지만 비현실적으로 크게 확대했다는 점에서 추상화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전시 제목이 ‘Blow-up’(확대)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작품들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의미를 몰라도 누구나 보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려서다.붓질과 색, 질감이 캔버스마다 미묘하게 다른 점이 ‘보는 맛’을 더한다. “캔버스의 질감은 음식의 육수와도 같아요.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림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지요. 저는 저만의 매너와 붓질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결과물입니다.”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