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여겨진 용…성공과 성취의 또 다른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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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방구·병풍·기와 등누군가가 성공했을 때 우리는 ‘용됐다’는 말을 쓴다. 용이 커다란 성공과 성취를 뜻하는 상징인 셈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 ‘용꿈’ ‘등용문’과 같은 다른 일상적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용은 동아시아 전통에서 중요한 영물(靈物)로 취급받았다. 상상 속 동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십이지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위상 덕분이다.
생활 곳곳에도 자리잡아
나쁜 기운 몰아내는 존재
2024년 갑진년(甲辰年)을 상징하는 동물은 용이다. 용은 오래전부터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용이 큰 못이나 강, 바다와 같은 물속에 살면서 물과 바람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연 현상을 다스리는 만큼 여러 신 중에서도 위상이 높았다. 농부들은 가뭄이 들 때 용신에게 기우제를 올렸고, 바닷가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며 용왕에게 풍어제를 지냈다.용은 왕의 상징이기도 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라는 점에서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동명성왕이 황룡을 타고 승천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왕이 일할 때 입는 의복인 곤룡포의 가슴과 등, 어깨에는 용무늬가 새겨졌다. 왕의 얼굴은 용안, 왕의 의자는 용상으로 불렸다. 같은 맥락에서 용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호국의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용이 돼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며 동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적혀 있다.
서민들의 생활용품 곳곳에도 용은 자리했다. 마을 사람들은 복이 오기를 바라며 솟대에 용을 깎았다.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도 문방구에 용을 새겼다. 집안의 문, 병풍을 장식하기 위해서도 용을 그렸다. 나쁜 귀신을 막는 액막이 그림에서도 눈을 부라린 용을 볼 수 있다. 건물 지붕 중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마루는 ‘용마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용머리 모양 기와를 장식해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邪)의 의미를 강조했다.
용은 초월적인 세계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배를 반야용선이라고 부르는 게 단적인 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