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X끼', '지X'…노골적 비속어로 문단 두드린 29세 시인 박참새 [책마을 사람들]

정신머리

박참새 지음
민음사
240쪽│1만2000원
"XXX… /얼마나 더 바라야 제 소원 들어주실래요 /죽여 달라니까요… 돌연사를 바란다고요…"

저주와 비속어가 난무하는 이 문장은 박참새 시인(29·사진)의 시 '창작 수업'의 첫 구절이다. 등단을 준비하는 시 속 화자는 "더럽게 쓰고 싶었다"며 이렇게 쓴 습작을 제출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구리다"는 속된 질타뿐이다. 창작 수업의 선생은 "감상이 지나치고 감정이 질척댄다"며 절제할 것을 권한다. 화자는 당돌하게 대꾸한다. "ㅋㅋ 웃겨 정말" 연초부터 적나라한 언어와 파격적인 형식으로 기성 문단의 아성을 두드리는 작가가 나왔다. 최근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참새 시인이다. "활화산 같은 언어가 페이지를 뒤덮는다"(이수명 시인) "형식적 파괴 속 보이는 단단함"(조강석 문학평론가) 등 심사위원 평가를 받으며 25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수상했다. 1981년 민음사에서 제정한 김수영문학상은 2006년부터 미등단 작가들한테도 기회를 주고 있다.
박참새 시인 프로필 이미지. ⓒ곽예인 /민음사 제공
데뷔시집 <정신머리>를 출간한 박참새 시인과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깡패처럼 제멋대로 쓰고 살렵니다"라는 '까칠한' 수상소감과 달리, 실제로 그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도전자의 자세로 답변을 이어갔다. "운과 성실함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한 발 뗐을 뿐이니, 수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신머리>에 수록된 55편의 시편에는 기성 권위에 끊임없이 이의제기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의 싸움에서 승산은 희박하다. '내가 나의 아군이라면'이란 시집의 자서(自序)가 암시하듯, 본인 스스로도 자신 있게 '아군'이 되지 못한 상태다. 잔뜩 위축된 상황에 놓인 화자는 "네가 오로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작업은 그 집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되뇐다. 박 시인은 정식 등단 이전부터 문학계에서 입소문을 탔다. 온오프라인 플랫폼 '모이(moi)'의 북 큐레이터, 도서 리뷰 팟캐스트 '참새책책' 운영자 등 여러 경로로 이름을 알리면서다. 2022년 출간한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은 미등단 작가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초판 3000부가 완판되며 증쇄에 들어갔다.

출판업계에서 '문학계의 젊은 인플루언서'로도 거론돼 왔지만, 박 시인은 오히려 이 같은 수식어에 손사래 쳤다. 자신의 작품이 아닌 화제성만을 눈여겨보는 주변 시선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 시인은 "정식 작가도 아닌 저를 설명할 단어가 마땅치 않았으니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에선 기성 권위에 도전해온 그가 역설적으로 '등단'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에 매달린 이유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읽고 쓰던 그는 2년 전부터 시 창작 수업 '모범생'을 자처하며 작시를 배웠다. 그는 "저의 작품세계를 남들이 의심하지 않고, 저 자신도 의심하지 않기 위해선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실력을 입증해야 했다"고 말했다.
&lt;정신머리&gt;(박참새 지음, 민음사)
그의 시집은 파격적인 형식으로 출발선에 선 시인의 내적 고뇌를 노래했다. 3편의 긴 산문으로 시작하는 그의 시집은 이메일 메신저와 일기, 진료차트, 시나리오 등 여러 형식을 오간다. 본문 대부분을 가운뎃줄로 지워놓은 '울음 찾는 자'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단어들로 구성된 '멋쟁이 토마토 A씨의 치료 일지' 등의 설정도 흥미롭다.

한편으론 난해한 시들이 독자의 '정신머리'를 흔들어놓는다. 시집에는 강간과 살해 위험에 시달리는 여성,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 부모와 결별한 자녀 등 극한 상황에 내몰린 화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상황에 공감하거나 반감을 품을 무렵, 전부 시인의 상상에서 나온 인물들이란 사실이 환기된다. 박 시인은 "전부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깨닫는 순간 시가 지닌 '발칙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참새라는 필명은 흔히 볼 수 있는 참새의 이름에서 따왔다. 박 시인은 <출발선 뒤의 초조함>에서 "내가 아는 새에게는 둥지가 없다"면서도 "운이 좋게도 무리가 있다"고 썼다. 시인은 '제멋대로 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신머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저 자체인 것 같아요. 아직 세상을 향해 줄 수 있는 거대한 메시지도 없고. 문학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큰 다짐도 없죠. 그저 시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정신머리 없는' 시집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