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는 어쩌면, 악단의 튜닝을 교향곡에 담아낸 첫번째 마에스트로

[arte] 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오케스트라의 튜닝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의 시작

한 오보이스트의 꿈

리허설이 끝났다. 한국의 도시 서울이라는 곳의 공연장. 작년에도 함께 왔던 지휘자는 리허설을 진행하며 이곳의 소리가 작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휘자가 알아본 바로는 일 년 사이 콘서트홀의 무대마루를 교체하는 공사가 있었다고 했다. 맨들맨들 윤이 나는 무대마루가 아마 이 공연장의 소리를 변하게 한 것 같다는 추측을 했다. 울림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고음 영역이 조금 더 다듬어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작품을 지휘할 때 작년과는 다른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이야기하며 리허설을 이끌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공연장의 환경은 같은 듯 다르다. 기후가 다르고, 계절이 다르며, 더운 기운 추운 기운이 다르고, 건조함과 습함이 다르다. 그 각각의 도시들이 지닌 공연장에 들어서며 항상 루틴을 챙기고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타건 후 자신에게 돌아오는 최적의 소리를 찾는 피아니스트처럼 악기를 불어보기도 하며, 많은 연주자가 그러하듯 박수를 쳐보기도 하며, 그날의 음악회 프로그램에 맞는 음색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며,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구 위의 온 세계가 일 년 내내 항온항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스스로 웃기도 한다.리허설을 따라가며 이곳 서울의 공연장이 갖는 특징들에 대해 차분히 생각한다. 나는 오늘 어떤 A를 건네야 할까? 작년처럼 매진이라면 청중이 가득 메운 공연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리허설과는 달라진 환경을 점검하고 그에 맞는 음의 세기와 음색을 보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협주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 아름다운 2악장을 여는 나의 소리는 협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색과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보기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음악회가 곧 시작된다. 내가 시작하는 오늘의 공연. 청중이 가득 들어찬 이곳 서울의 공연장. 공연을 시작하는 나의 소리는 가장 아름다우며 아울러 이 공간 그리고 오케스트라 구성원들 모두와 가득 어울리는 소리이기를.

조율이 없던 음악회 – 2019년 11월 12일
안드라스 쉬프 &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

18세기 초반 유럽 어느 공연장의 풍경. 바이올리니스트인 악장이 튜닝 포크를 들고 자신의 악기와 음을 맞춘다. 튜닝 포크의 피치에 맞춰진 자신의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자들의 대기 공간을 순회하며 자신 악기의 소리로 다른 모든 현악기의 조율을 진행하고 공유한다. 혹은 무대 위에서 즉흥연주를 시작한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무대 위 모든 연주자가 오르간의 연주에 맞춰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고, 악기의 조율이 정리되면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 역시 종료되며 공연 프로그램 첫 작품의 연주를 시작한다. 마에스트로 안드라스 쉬프와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진행된 2019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피아니스트와 오보이스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은 그들이 조율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오케스트라가 마에스트로 등장 전 자신들의 모습을 정돈하는 조율 그리고 모든 악기의 조율이 끝나면 이제는 청중들의 박수만이 마에스트로를 맞이하는 그 광경을 볼 수 없던 음악회. 서양 음악사의 고전 시대, 교향곡 작품을 모든 악기의 총주로 웅장하게 시작한다는 의미일 수 있는 < Premier coup d’archet >. 그 시작의 만끽을 청중에게 선사하기 위해 연주자들은 조율의 모습을 숨기거나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18세기 유럽의 여느 콘서트홀처럼, 마에스트로 안드라스 쉬프와 카펠라 안드레아 바르카 오케스트라는 조율을 숨긴 채 공연을 시작했다.

오보이스트가 준비된 A 음을 연주자들에게 들려주는 일, 솔리스트이며 마에스트로인 안드라스 쉬프가 청중의 박수를 받고 등장해 피아노 A 건반을 누르는 과정이 생략되었던 음악회는, 역시 피아노에 앞서 오케스트라 총주로 시작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과도 어울려, 말 그대로 고전음악의 고전적인 시작인 것 같아 독특했다.
오케스트라 튜닝에 대한 경쾌한 해학 / 에드가 바레즈 작품 “Tuning Up”

음악회의 시작인 튜닝, 구스타프 말러 1번 교향곡의 시작을 수놓은 A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 지난 세기를 풍미했던 마에스트로 레너드 번스타인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에 대해 멋진 표현을 했다. “한 발은 19세기에, 다른 한 발은 20세기에 걸쳐있는 작곡가”라고. 짧게는 낭만시대에서 현대음악으로의 전환, 길게는 20세기 전과 그 후 음악의 변화를 상징하며 대변하는 작곡가라는 극찬이 아니었을까.

그럼 오케스트라의 튜닝에 대한 생각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을까? 교양 있는 시민이 듣기에 공연의 본 프로그램 앞에 모든 악기가 웅성거리는 그 과정은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을 테고, 연주자들은 튜닝의 과정이 청중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을 테고, A 음이 아닌, 오보에가 아닌 그리고 국제표준 피치 A=442Hz가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 역시 있었을 것이다. 한 세기 정도의 시간을 두고 탄생한 건반 악기 두 작품의 제목이 주는 의미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고는 하는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이탈리안 협주곡>과 로베르트 슈만이 작곡한 <교향적 연습곡>이 그것이다. 건반악기 하나의 작품에 ‘협주곡’이라는 표현을 쓰는 일, 건반악기란 총칭의 개념이기보다는 독자적인 이름을 획득하게 된 피아노에 ‘교향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일. 타건의 힘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크기의 소리를 내는 그 편안함에서 타건의 힘에 비례해 음의 셈여림을 조절할 수 있다는 그 위대함을 깨우치기까지의 시간을 이 두 작품의 제목은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상상해보고는 한다.

오케스트라의 튜닝 역시 소음이기보다는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며, 음악회 본 프로그램을 맞이하기 전 청중의 마음에 정리와 평안을 가져다주는 과정이며,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소리를 건넬 수 있는 오보에 혹은 피아노 건반의 소리에 대한 음악가들과 음악 애호가들과의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순간이며, 예민한 청중들에게는 오케스트라의 능력치 역시 사전에 잠시 맛볼 수 있는, 그런 정의가 혹시 지금과 어울리는 것이 아닐는지.
그 인식의 전환을 자신의 모든 교향곡 첫 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형상화해준 작곡가가 혹시 구스타프 말러이지 않을까? 그 생각의 단초, 김문경 지음의 도서 <김문경의 구스타프 말러>에는 말러의 첫 번째 교향곡을 시작하는 A 음에 관한 작곡가의 언급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현이 모두 A 음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 공기의 흔들림과 반짝임을 표현하기에는 음이 너무 크다고 느꼈습니다. 갑자기 바이올린의 가장 높은 음에서부터 더블베이스의 낮은 음까지 모든 현 주자로 하여금 하모닉스 주법으로 연주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 음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현악 연주자들이 현을 꾹 누르는 정상 주법으로 연주하도록 하였지만, 현의 일정한 지점에 살짝 손을 얹어 배음의 효과를 얻는 하모닉스 연주법(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악보 상에는 플레절렛 주법)으로 바꿈으로서 얻게 되는 가벼움, 다양한 음색으로의 변환, 끝으로는 가장 낮은 A로부터 가장 높은 A까지를 의도할 수 있는 일. 그것들을 담아낸 말러 교향곡 제1번의 첫 구절은, 모든 악기의 소리가 A란 음을 향해 움직이고 음악회 공간을 부유하며 공기의 흔들림과 반짝임을 만들어내는 조율이라는 시간과 닮아있다 생각하면 억측일까? 조금 더 나아가서는 곧 한 세기 넘게 사랑받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9개 교향곡의 화려한 시작을 조율하는 멋진 의도였다고 생각한다면 옳지 않은 사람일까?
&lt;1. Violine&gt; 표시 아래로 펼쳐진 A의 세상
끝으로는 현대음악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음악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한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러의 첫 번째 교향곡 첫 구절에 대해 그의 저서 <말러-음악적 인상학>에 등장시킨 짧은 언급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튜닝’으로, ‘(천국에서 지상까지)촘촘하게 드리운 해진 얇은 커튼’은 ‘조율의 시간과 본 프로그램과의 경계’라고 치환해 본다면, 이처럼 멋들어진 비유가 있을까 필자 스스로는 종종 감탄하며 읽는다.“그 소리는 하늘에서부터 아래로, 다 해졌으나 촘촘하게 드리워져 있는 얇은 커튼이나 다를 바 없다.”
체코 칼리슈테 구스타프 말러의 생가 /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