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성공사례' 칠레 민간연금, 40여년만에…'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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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선택해 연금 운용하는 '민간연금''연금 개혁'의 성공 사례로 꼽혔던 칠레 민간 주도 연금이 도입된지 40년만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투자 규제에 위험성-수익률 역전 현상
포트폴리오 아닌 자산군별 비중 규제
기여율 부족·비공식 노동시장도 문제
아르투로 시푸엔테스 전 칠레 국부펀드 투자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 기고를 통해 "선진적이었던 칠레의 연금제도에 이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사회보장정책을 대폭 확대한 결과 연금 재정이 파탄 직전까지 갔다. 이후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은 1981년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의 골자는 '민간 주도'다. 연금 가입자가 월급의 10%를 납부하고 이를 민간 연금기금운용사(AFP) 중 하나를 선택해 운용을 맡기는 방식이다. 가령 위험성과 수익률에 따른 A B C D E 5가지 펀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입자의 연령에 따라 위험성이 낮은 펀드로 옮겨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위험을 감수한 연금 가입자의 수익률이 오히려 더 낮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은퇴 저널 가을자에 따르면 위험도가 가장 낮은 E 펀드의 수익률이 위험도가 가장 높은 A 펀드를 능가하는 사례가 절반이 넘었다. 이러한 왜곡이 발생한 것은 연금 투자 규제 때문이다. 칠레 연금기금감독위원회(SAPF)는 위험도를 조정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수준의 위험 지표가 아니라 자산군별 최소·최대 비율을 규제하고 있다. 가령 주식 내에서 위험도를 높은 종목과 낮은 종목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국채·회사채·주식 등 자산군별 비중을 정해놓는 식이다.
이러한 자산군별 비중 규제는 사모펀드(PEF), 리츠(부동산투자회사) 원자재 등 대체투자의 길도 막아놓고 있다. 페소화로 표시되지 않은 투자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규정도 수익률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헤지 규정이 통화를 다양화해서 얻는 이점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시푸엔테스 전 위원장은 이러한 규제로 인해 수익률이 연간 2%포인트 가량 하락했다고 추정했다.
이 외에도 연금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도 산적해있다. 현재 수준의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여액을 현재 10%에서 5~7%포인트 높여야하지만 정치권은 개혁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많은 칠레 노동자가 공식-비공식 노동 시장을 오가는 상황에서 비공식 고용 기간에는 연금 계좌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칠레 근로자가 연금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른다는 점도 제도 운영상의 허점으로 거론된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