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음날 여객기 화재…'잔혹한 새해' 맞은 日 열도

밤새 공포에 떨었는데…또 가슴 철렁한 일본

강진에 수십명 사망, 교통 마비
"7일내 진도7 강진 또 온다" 긴장
발전소 가동 멈춰 전력가격 급등

하네다공항서는 항공기 충돌
JAL 탑승객 379명 전원 탈출
해상보안청 요원 5명은 사망
<‘최대 피해’ 와지마시, 건물 200채 전소> 지난 1일 일본 서부 이시카와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해 2일 오후 3시30분 기준 최소 48명이 사망했다. 이날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서 지진으로 건물 수십 채가 무너지며 화재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새해 첫날인 1일 일본 서부 이시카와현을 덮친 규모 7.6의 강진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날 기준 48명으로 늘었고, 발전소가 멈춰서며 전력 가격이 치솟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일본항공(JAL) 항공기가 지진 피해 지역에 물자를 수송하려던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와 충돌해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호물자 수송하려다 5명 참변


2일 JAL과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께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을 출발해 오후 5시47분께 도쿄 하네다공항에 착륙한 JAL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주행 중이던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했다. 두 항공기 모두 충돌 후 커다란 화염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화마에 휩싸인 JAL 항공기> 2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일본항공(JAL) 항공기가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해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해양경비대원 5명이 숨졌다. 이날 오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JAL 항공기가 화염에 휩싸여 있다. EPA연합뉴스
JAL 항공기에 타고 있던 승객 367명과 승무원 12명 등 379명은 전원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탑승했던 경비대원 6명 중 기장을 제외한 5명은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해상보안청 항공기는 지진 피해를 입은 이시카와현 노토반도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니가타 항공기지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항공기 전문가를 인용해 “두 항공기 중 한쪽이 관제사 지시를 잘못 들었거나 관제사가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로 하네다공항의 국내선 터미널을 관리하는 일본공항빌딩은 이날 오후 6시30분께 하네다공항 활주로를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했다고 밝혔다. 하네다공항을 오가는 한국 항공기 운항도 차질을 빚었다. 이날 김포에서 출발해 하네다공항에 도착하거나, 하네다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됐다. 일부는 나고야공항으로 회항했다. 하네다공항은 오후 9시30분께 활주로 4개 중 사고가 난 1개를 제외한 3개의 운항을 재개했다.

부상자 다수…7층 건물 쓰러져


지진 피해도 이어졌다. 이자카와현은 강진 이틀째인 2일 오후 3시30분 기준 현 내에서 48명의 사망자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와지마시 19명, 스즈시 20명, 나나오시 5명 등 진앙에서 가까운 지역에 피해가 집중됐다.

피해가 가장 큰 와지마시에선 7층 건물이 옆으로 쓰러졌다. 일본 3대 아침시장으로 유명한 ‘와지마 아침시장’ 주변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주택 200채가 전소했다. 와지마시 등은 실종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NHK는 “무너진 건물 아래에 사람이 깔려 있다는 신고가 수십 통 접수됐다”고 전했다.

일본 총무성은 이날 낮 12시 기준 이시카와현에서 14명의 중상자가 발생한 것을 비롯해 도야마·니가타·후쿠이·기후현 등 5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피난소로 향한 피난민만 5만7000여명에 육박했다.정전과 단수 피해도 이어졌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호쿠리쿠전력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이시카와현 3만4000가구의 전기가 끊겼다. 후생노동성은 오전 7시 기준 5개 현 19개 시에서 단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시카와·니가타·도야마현의 19개 의료기관은 정전과 단수로 의료 서비스를 중단했다.

교통 인프라도 마비 상태가 계속됐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와 니가타현 니가타시를 연결하는 신칸센은 오후 3시부터 정상화됐다. 피해가 집중된 노토반도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 철로, 항공망은 여전히 끊어진 상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자위대와 소방, 경찰 인력을 총동원해 진입이 극히 어려운 이시카와 북부 지역의 교통망을 최우선으로 연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지리원 “국토 서쪽으로 3m 이동”


지진이 발생한 이시카와·후쿠이·니가타현은 일본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원전규제위원회는 전날 “현시점에서는 노토반도의 시카원전을 포함해 주변 지역 원전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하지만 주변 지역의 화력발전소들까지 가동을 줄이거나 멈추면서 전력 가격이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일본도매전력거래소(JEPX)에서 전력 현물 가격은 ㎾h당 10.36엔으로 전날보다 15% 올랐다.

여진 피해도 우려된다. 일본 기상청은 “앞으로 1주일간 최대 진도 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국토지리원은 이번 지진으로 진앙에서 가까운 와지마의 지각이 서쪽으로 3m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전날 오후 4시10분께 발생한 지진 규모는 7.6, 진도는 최고 등급인 7로 확인됐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진도 7을 기록한 지진은 2016년 구마모토지진, 2018년 홋카이도지진에 이어 세 번째다.

도쿄=정영효 특파원/노유정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