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어의 아버지'는 뉴욕 닉스 구단주, 지구 안에 우주를 심다[라스베가스 스피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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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어를 만든 사람들 누구인가라스베가스 스피어는 고글도, 헤드셋도 없이 맨몸으로 '초월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몰입형 예술은 이제 흔해졌지만 스피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아무리 뛰어난 미술관에 가더라도 환호하며 박수치는 사람은 없고, 아무리 멋진 사운드의 공연을 접하더라도 시각적 환희까지 느끼기는 쉽지 않은 일.
스피어 안에선 16만 개의 스피커가 귀를 자극하고, 축구장 3개 크기의 초고화질 스크린이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한다. 냄새와 미세한 진동까지 느껴져 그야말로 '인간이 동시에 감각할 수 있는 모든 자극'이 아무런 장비 없이도 가능한 셈이다. ◆'뉴욕의 억만장자' 제임스 돌란
동시대의 첨단 기술이 모두 응축된 '22세기형 엔터테인먼트의 끝'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이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은 미국 메디슨스퀘어가든그룹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사업가 제임스 로렌스 돌란(69) 회장이다. 그는 뉴욕 기반의 케이블 TV 사업자 케이블 비전을 창업한 찰스 돌란의 아들이자, 현재 메디슨스퀘어가든그룹을 이끌고 있는 미국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 돌란 회장은 메디슨스퀘어가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MSG네트웍스 및 스피어엔터테인먼트를 이끌며 뉴욕닉스(농구팀)와 뉴욕레인저스(하키팀)의 구단주도 역임하고 있다. 스스로를 '음악가'라고 소개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어느 날 둥근 지구 모양의 스케치가 그려진 공연장 설계도를 그리며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창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일생의 꿈을 스피어를 통해 이뤘다고 말한다. 2018년 착공한 스피어는 건설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초기 12억달러였던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건축비에만 23억달러를 썼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완공은 2년 이상 늦어졌지만 자신의 일부 자산을 매각하고 회사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라스베가스의 랜드마크 건설을 주도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덴 늘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법. 스피어의 런던 진출이 '빛 공해 이슈'로 무산되고, 스피어 개관으로 인해 모기업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스피어는 아부다비 등 세계 주요 도시로의 진출을 계속 타진하고 있다. ◆스피어의 예술가들-에스 데블린 등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공연을 위해 스피어엔터테인먼트는 동시대 예술가들을 대거 초청해 '레지던시'를 운영했다. 그 결과 U2의 198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수 많은 명곡들과 동시대 예술의 접점을 찾아냈다. 루이비통 런웨이, 뉴욕 메트오페라와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 등의 무대 디자인으로 유명한 에스 데블린은 U2의 라이브 공연 무대를 위해 '네바다 아크(Nevada Ark)'를 만들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네바다주의 250여 종의 동식물을 무대 전체에 불러낸 것. 어두운 단색의 스케치로 보여진 이 동식물들은 형태는 U2·UV 공연의 마지막 곡 '뷰티풀 데이'가 흐르면서 점차 화려한 본래의 색을 입고 반짝이는 빛에 휩싸인다. 1만8600석의 좌석과 무대 앞 스탠딩석을 채운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마치 지구의 중심으로 가장 깊숙이 내려가 땅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어서다. 앰비언트 음악 (전자음 등 최소한의 소리로 만든 명상적 장르)의 개척자이자 데이비드 보위, U2, 콜드플레이의 앨범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브라이언 이노의 'LED턴테이블(2021)' 작품은 서정적 멜로디의 음악과 함께 무대 전체를 오묘한 색깔들로 물들였다.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등의 음악이 흐를 때 다른 지붕의 LED들은 모두 어두워지고, 오로지 바닥면의 턴테이블 위에서 보노와 밴드가 춤추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현대예술가이자 영화 감독 마르코 브람빌라는 3D 이미징 기술과 생성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라스베가스의 전설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불러냈고, 아일랜드 출신의 예술가 존 제라드는 스피어 안에 자신의 시그니처인 거대한 깃발을 재현했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인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유전 개발이 휩쓸고 간 곳곳에 '검은 깃발'을 꽂았던 그는 스피어의 대형 스크린 안에서 깃발을 힘차게 뒤흔들다 붉게 태워버리는 장관을 연출했다. 라스베가스=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