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좌초된 첫 SMR…"원전 르네상스 발목잡히나" 우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미국 주도로 전 세계 원자력발전 열풍이 되살아났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는 "원전 르네상스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미국 최초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이 취소된 이후 원전 업계가 처한 난관들이 부각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원전 스타트업 뉴스케일은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부지에 SMR 6기를 짓기로 한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2년 만에 해당 SMR의 전력 판매단가를 53% 가량 인상한 뒤로 충분한 고객사(전력 구매자)를 확보하지 못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뉴스케일의 좌초 소식 직전에는 엑스에너지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해 상장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잇단 악재에 미국 원전 업계에서는 또 다른 스타트업 오클로의 스팩 합병 성공에 희망을 걸고 있다. 오클로는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일으킨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설립한 차세대 원전 기업이다.

코웬의 마크 비앙키 애널리스트는 "(논란이 있는) 스팩 합병 방식에 대한 자본시장의 회의감은 차치하고 원전 설비 설치 자체에서 고금리, 물가상승에 의한 사업비 급등이 문제"라며 "뉴스케일 사업 취소, 엑스에너지 거래 무산 등 연이은 소식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씩 누적된 사업 지연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초래한 주범으로 꼽힌다.지난해 미 대륙에 30년 만에 새로 들어선 대형 원전인 조지아주 보글(Vogtle)이 대표적이다. 당초 가동 계획보다 7년 늦어졌고, 그동안 사업예산 초과 규모는 170억달러에 달했다. 컬럼비아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신(新)원자로의 비용 불확실성'이란 보고서에서 "보글 사례는 미국 땅에 원전 건설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명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정책을 통해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산업 현장의 분위기와 달리 미국 정부는 원전 부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용량을 2020년 대비 3배로 늘린다"는 성명을 내는 데 앞장섰다. 그간 안정성 등을 이유로 외면받던 원전을 국제무대에서 친환경 탄소저감 기술로 공식 인정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내부적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신규 원전 설비에 대해 30% 세액공제 혜택을 준 데 이어 작년 11월엔 미 의회에 원전 업계에 대한 21억여달러짜리 추가 예산안 승인을 요청했다. 원전에 쓰이는 핵연료의 미국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안이다.정부 차원에서 당장 풀어야 할 숙제는 따로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전 관련 규제 리스크다. 전 세계 에너지기업들은 원전 부흥의 일환으로 SMR이나 초소형 원전(MMR) 등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현재까지 80여종의 기술이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의해 공인된 기술은 뉴스케일이 보유한 기술 하나였고, 지난해 12월 중순 카이로스파워의 용융염 원자로 기술이추가됐다. 워싱턴 싱크탱크 브레이크스루의 아담 스타인 책임자는 "당국의 기존 규정은 일반적으로 1GW(기가와트)급 이상의 대형 원자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SMR, MMR 등 신기술에 적용하기에는 유연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