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연주와 함께 풀어보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비밀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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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 Op.110 A플랫장조는 베토벤의 작품 활동 중 후기에 속하는 작품으로, 베토벤이 51세 때에 완성한 곡입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1820년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여름날에 처음 착상하여 그 다음해 성탄절 무렵에 공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은밀한 고백을 하는 듯한 독특한 느낌으로 인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가운데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습니다. 아래에서는 마치 다빈치코드처럼 숨어 있는 이 곡의 비밀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당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아래에서 표시된 연주시간은 달리 표시가 없는 한 이 연주 동영상에 관한 것입니다).
조성진
제1악장
1악장은 콘 아마빌리타(con amabilita, 사랑스럽게)라는 작곡가의 지시어처럼 첫 도입부부터 사랑에 흠뻑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조용히 흥얼거리는 듯한 우아하고 부드러운 노래(cantabile)로 시작합니다. 이 1악장의 서두는 마치 달콤한 사랑의 쓰라린 아픔을 내면으로 감추는 듯한 30번 소나타의 마지막 변주 악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합니다.이 곡의 빠르기는 모데라토이므로 알레그로처럼 너무 밝은 기분으로 연주하여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베토벤의 악보를 보면 아래와 같이 트릴이 점점 커졌다가 점점 줄어들도록 지시하는 등 셈여림의 지시가 극도로 정교해서 빠른 템포에 의해서는 (특히 무거운 음향의 현대 피아노로는) 그와 같은 섬세한 뒤나믹스를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렵습니다.이 도입부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 파우스트(Faust) >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가 결국 미천한 여인(그레트헨)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베토벤은 이 1악장 도입부의 사랑 가득한 주제의 노래에서 3악장 구원의 푸가(Fuga)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 도입부를 잘 들어보면 그 속에 3악장의 구원의 푸가가 숨어 있다는 말이지요.참고로, 요제피네 브룬스비크의 딸 Minona가 실제로는 베토벤의 아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만(Minona는 음악에 재능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녀의 아래 사진을 보면 베토벤과 닮은 듯도 합니다), 이는 실제로 증명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그러나 사실이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베토벤이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남긴 불멸의 연인이 분명히 존재했었고 그들의 사랑은 불행하게도 이생에서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31번을 포함한 그의 피아노 후기 피아노 소나타에는 뒤에서 어른거리는 불멸의 연인의 그림자가 분명 감지됩니다.이전에 다른 글을 통해 소개 드렸습니다만, 베토벤은 이미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번의 마지막 악장을 통해서 내면으로 삭이는 애절한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 31번 소나타의 1악장에서도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합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베이스라인에 구원의 주제가 숨어 있는 이 사랑의 찬가는 처음에 온화한 코랄과 같이 울려 퍼진 후 곧바로 아무런 가식도 없이 단순한 가락으로 노래를 이어 나아갑니다(0:24).
그 단순한 가락의 노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8번 G장조의 2악장 Tempo di Menuetto의 사랑스럽고 우아한(Dolce) 가락을 떠올리게 합니다.
Tempo di Menuetto
그 노래는 곧 꽃처럼, 비눗방울처럼 흩날리며 기억의 공간에 퍼지기도 합니다(0:46). 이 부분에서는 아쉬케나지 연주 동영상의 악보와 같이 베토벤이 섬세하게 기재한 스타카토 또는 악센트 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아래 키신, 아쉬케나지 연주 등), 많은 연주에서 이 스타카토 또는 악센트가 실제 연주에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키신
아쉬케나지
그 후 바로 곡은 조용히 내면으로 돌아옵니다(1:11). 그리고는 마음은 점점 끓어올라 왼손은 아주 낮은 음의 한계까지, 오른손은 아주 높은 음계의 한계까지 팔을 크게 펼쳐 연주한 후(1:31) 피아노는 왼손이 하행음계로 내려가는 상황에서 오른손은 오히려 상승하는 음계를 노래하는 등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냅니다(1:39).
이 부분에서는 아래 악보의 파란색 표시 부분과 같이 베토벤이 엇박 리듬에 의한 아주 미묘한 아티큘레이션을 구사하고 있는데요(아래 후쫑 연주 참조), 아쉽게도 대부분의 연주에서 이러한 아티큘레이션 지시가 없는 것처럼 평범하게 연주해버립니다.후쫑
아무튼 그 후 분위기는 곧 잦아들면서 제시부는 마무리되고 다소 다른 분위기의 발전부로 넘어가면서(2:23) 사랑의 노래는 단조로 다소 불길하게 흐릅니다. 도중에 오른손이 부르는 노래에 대해 왼손이 신음하듯 그르렁거리는 형태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갈등을 겪습니다(2:36 이하).
그 후 재현부(3:12)에서는 이내 다시 왼손의 아르페지오 음형 위로 오른손이 평화로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원래의 행복한 회상에 젖은 분위기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순간 무엇인가 좀 더 깊은 상념에 잠기더니(5:47) 이내 다시 원래의 분위기를 되찾은 후(6:03) 급기야 마지막 부분에서는 (3악장 구원의 푸가 주제가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의 테마를 잠시 더 노래하려다가(6:37) 아주 갑작스럽게 끊기고 순식간에 곡은 2악장으로 넘어갑니다.
제2악장
베토벤은 이 2악장 스케르초를 당대에 유행하던 아주 저속한 내용의 노래, 즉 〈새끼를 63마리나 낳은 우리 냥이〉(6:56) 또는 〈너나 할 것 없이 난봉꾼들〉(7:08) 등의 민요 가락을 각각 1, 2 주제로 하여 반복적으로 구성합니다.스타카토와 레가토로 강렬하게 대비를 이룬 아티큘레이션이 매우 자극적인 리듬을 만들어 내는데(아래 악보 참조), 마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술로 방탕한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이 악장의 트리오 부분(7:38)의 리듬 역시 다른 악장과 달리 매우 세속적이고 자극적입니다. 술 마시고 딸꾹질하는 듯한 리듬으로 치는 왼손의 상행음계와 정신없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듯한 하행음형을 연주하는 오른손이 서로 교차하는 이 부분은,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들도 실제 연주에서 대단히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후 다시 곡은 스케르초 주부로 돌아와(8:05) 위에서 설명 드린 저속한 민요가락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방탕한 느낌의 악장은 3악장으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제3악장
이미 넘어야 할 선을 많이 벗어난 일탈이 2악장에서 있어서인지 3악장의 시작은 긴 전조(modulation)의 과정을 거칩니다(9:09).그 후 계속 페달을 밟은 채로 울리는 아르페지오의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가 전개된 후 마치 9번 교향곡의 〈환희의 합창(An die Freude)〉 시작 전의 레치타티보의 “이건 아니야(Nicht diese Toene)” 부분을 연상케 하는 음형의 신음을 시작으로(9:51) 곡은 이른바 베붕(Bebung, 음의 떨림)에 의한 흐느낌과 함께(10:01) 깊은 참회와 슬픔으로 내려갑니다.
3악장은 특히 다른 악장에 비해 유독 긴데, 초고를 보면 작곡가가 3악장의 매크로적인 구상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드러납니다. 또한 마이크로적으로 보더라도, 베토벤은 흐느낌을 표현하는 베붕과 같이 현대 피아노로는 표현이 불가한 특수 기법을 섬세하게 동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붕은 현악기의 비브라토와 비슷한 효과를 건반악기에 구현하는 기법으로서 당시의 건반악기의 일종인 클라비코드의 경우 연주자가 건반에서 손가락을 완전히 떼지 않고 연속하여 같은 건반을 반복적으로 누름으로써 음의 떨림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 악기인 클라비코드에서 이러한 베붕이 실제로 어떻게 울리는지는 유튜브를 통해 직접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베붕
위에서 언급한 3악장 처음에 탄식의 노래가 나오기 직전 이외에도 구원의 푸가 이후 나오는 두 번째 탄식의 노래에도 이 베붕 기법이 쓰였는데 현대의 피아노에서는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탄식의 노래에서 베토벤이 거듭 차용한 베붕 기법은 악상의 표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구이므로 결코 연주자가 간과하여서는 안되는 부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편, 베토벤이 이 작품을 쓴 시점은 베토벤 스스로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자부하던 <장엄미사(Missa solemmis)>의 작곡에 몰두하던 시점과 겹칩니다. 속죄와 구원의 주제를 다루는 거대한 작품에 몰입된 만년의 베토벤은 이 작품의 3악장에서 아래 J. S. 바흐의 <요한수난곡(Johannespassion)> 중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최후의 말을 노래하는 곡 '다 이루었다(Es ist vollbracht)'의 선율을 이용한 ‘탄식의 노래(Arioso dolente)’를 도입합니다(10:53 이하).
과거에 요제피네가 베토벤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1807년부터 에스토니아 출신 귀족 슈타켈베르크(Stackelberg)와 교제를 시작하고 1808년에는 그와 결혼을 해버렸던 그 시기에 작곡된 첼로소나타 3번에도 공교롭게도 위의 (바흐의 요한수난곡의 아리아 ‘다 이루었다(Es ist vollbracht)’에 기원을 둔) 탄식의 노래가 1악장의 중간에 등장하고 2악장에는 베붕 기법 또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그저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탄식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루지 못한 불멸의 연인에 대한 사랑의 고통이었을까요? 아니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게 하는 자신의 육신과 질병이었을까요? 아니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신의 죄악된 삶이었을까요?
탄식의 노래가 마지막 “다 이루었다”는 선언과 함께 종료된 후(12:39) 유명한 푸가가 이어지는데(12:54), 이는 아래의 <장엄미사>의 마지막 곡인 〈신의 어린 양(Agnus Dei)〉 중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Dona nobis pacem)”의 패턴을 차용한 것입니다.
주목할 사실은 (앞서 1악장 부분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이 푸가의 주제가 바로 이 작품의 1악장의 도입부 및 마지막에 내성부로 숨어 있는 선율이라는 점입니다. 불멸의 연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듯한 1악장의 주제에서 구원과 평화를 노래하는 푸가의 기본 선율을 추출해낸 것이 매우 특이합니다.
그러나 <장엄미사>의 마지막 악장에도 제시된 평화의 노래가 갈등과 전쟁의 주제의 방해로 인해 승리를 바로 쟁취하지 못하듯, 이 31번 소나타 3악장의 구원의 푸가 역시 바로 구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더 깊은 (마치 말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복받쳐 흐느끼는 극한 슬픔의) ‘탄식의 노래’가 나옵니다(15:20). 이 부분에서도 앞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흐느낌을 묘사하듯 베붕 기법이 악보에 표기되어 있는데(16:28 등), 이 부분에서 베붕을 통해 베토벤이 표현하고자 했던 극한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후 다시 “다 이루었다”는 선언이 있고(17:10) 이와 연결되어 마치 교회의 종소리와도 같은 신비스러운 10번의 장3화음(G)이 울립니다. 그 다음에는 앞서 나온 상행 후 끝에서 하행하는 제1 푸가의 주제가 살짝 변형(inversion, 전위)되어,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하행 후 끝에서 상행하는 제2 푸가의 주제로 다시 나타납니다(17:52).
그리고 두 번째 푸가 부분에서는 제1푸가의 주제를 축약하여 반복하는 부분도 나오는데(18:21) 이 축약된 푸가 주제의 리듬은 마치 2악장의 난봉꾼 주제와 같이 매우 세속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자극적이고 세속적인 리듬의 축약 푸가가 장중한 원래의 푸가 주제에 섞이기 시작하면서(18:36) 분위기는 점점 생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그 후 메노 알레그로(Meno Allegro, 알레그로보다 조금 느리게(etwas langsamer)) 부분(18:46 이후 부분)을 오히려 더 빠르게 치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로젠(Charles Rosen)처럼 “점점 생기를 되찾는다”는 베토벤의 표기에 충실하여 좀 여유 있게, 처음에는 좀 느리게 라는 작곡가의 지시처럼 덜 빠르게 치다가 점점 빠르기를 더해가는 연주자도 있는데, 저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아래 유튜브 음원 참조).
참고로, 메노 알레그로 이후부터 베토벤은 이상하게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주 가능한 부분을) 양손을 교차하여 치도록 지시하여 실제 연주자의 팔의 모습에서 마치 십자가 같은 형상이 묘사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습니다.
이처럼 곡은 급격하게 활기를 찾아 가면서 마치 앞서 본 자극적이고 세속적인 리듬의 축약 푸가가 보다 큰 호흡으로 회오리바람처럼 고양되는 원래의 장중한 푸가 주제에 섞여 들어갑니다(18:59).
그리고는 곧 바로 마치 세속의 욕망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리듯 자극적인 모습으로 축약된 푸가 주제가 소멸됨과 동시에 구원과 부활의 기쁜 새 노래가 나오기 시작합니다(19:19).
그 후 그 새 노래는 이제 확신에 찬 구원의 노래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데, (아래 악보의 파란색 부분과 같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베이스에 이어 빨간색 부분과 같은 요동을 배경으로) 곡은 승리와 환희의 팡파르와 함께 높은 곳에 도달하며 끝이 납니다.김선욱 (피날레 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