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中, 노동이사제·차등의결권 도입…한국기업 '초비상'

전인대, 회사법 전면 개정 승인…7월 시행
국유기업 당 영도력 확대, 총수 처벌 강화
차등의결권, 수권자본제 도입으로 혁신 장려
중국 정부가 차등의결권·영미식 지배구조·수권자본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회사법 전면 개정을 단행했다. 텐센트·알리바바 등 주요 대기업과 국유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내용도 개정 회사법에 담겼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노동이사제 도입 등 제도 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바빠졌다.

3일 중국 정부와 학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중국 당정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를 열고 ‘6차 회사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시행은 오는 7월1일부터다. 1993년 제정된 회사법은 2018년까지 5차례에 걸쳐서 수정됐고, 이번에 228개 조문을 수정·추가하는 대개편이 단행됐다. 중국 기업의 지배구조와 자본조달 제도 등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선진화 하는 동시에 중국 특색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조항들을 명문화해 대기업에 대한 당의 영향력도 확대했다는 평가다. 회사법 개정작업에 참여한 오일환(吴日焕) 중국 정법대 교수는 “현대적 기업 제도를 마련해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개정 회사법은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은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를 두도록 강제했다. 이는 한국 민간기업에 도입되지 않은 제도라는 점에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주요 기업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유한회사 사원 실권제도 도입도 국내 기업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자본금 납입을 유예한 소규모 법인의 경우 자본금 강제 납입 조치가 취해질 수 있어서다. 주주총회를 열지 않고 이사회 단독으로 증자를 단행할 수 있는 수권자본제도와 이사회 중심의 영미식 단층제 지배구조도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창업과 기업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차등의결권과 양도제한주식 등 종류주식을 허용한 점도 큰 변화다.

대기업과 국유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력은 더 강화됐다. 국가가 출자한 회사에 대해 ‘당의 영도적 역할을 강화한다’ 내용을 명문화하면서다. 필요에 따라 국유기업 경영에 당이 직접적 개입을 할 수 여지를 남겼다는 설명이다. 또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대기업의 실질적 지배자(한국의 총수)에 대한 주의·책임 의무를 강화했다. 총수에 대한 처벌 강화 조치는 대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수단 강화를 의미한다는 평가다.


韓 기업 비상...노동이사제 등 면밀히 살펴야

중국의 이번 회사법 전면 개정은 중국에 진출한 국내기업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기업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변화 내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동이사제, 유한회사 사원 실권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이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큰 제도적 변화다.
우선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자는 노동자 이사를 이사회에 반드시 둬야 하는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중국에 진출한 주요 대기업이 모두 해당한다. 노동이사는 노동조합 추천을 통해 임명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노동자들의 입김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은 경영 환경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중 관계 악화로 국내기업이 철수할 때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체화해 종업원과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토록 한 점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한회사 사원 실권제도의 경우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에 미칠 파장이 클 전망이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법인 자본금을 완납하지 않은 유한회사 사원에 대해 당국이 미납금 불입을 강제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내 설립된 유한회사의 상당수가 자본금 대부분을 미래 장기간에 걸쳐서 분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오일환 중국 정법대 교수는 “중국 내 한국 기업 상당수가 자본조달 이슈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미식 지배구조, 차등의결권 등 큰 변화

중국의 이번 회사법 개정은 2018년 이후 5년 만의 개정이다. 특히 이번 개정은 228개 조문이 새롭게 추가·수정하는 등 1993년 중국이 회사법을 도입한 이후 가장 큰 폭의 변화라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수권자본제·이사회 중심 지배구조·차등의결권·노동이사제 등 파격적인 법제 개편이 이뤄졌다.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기업의 자본 및 지배구조를 선진국 수준에 걸맞게 변화시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우선 지배구조 변화가 눈에 띤다. 기존 중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사회와 감사회의 이원구조로 돼 있었다. 앞으로는 영미식 단층제 지배구조와 이원구조 가운데 기업 자율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회 중심의 단층제 지배구조를 선택할 경우 한국이나 미국처럼 감사위원회를 이사회 내부에 두도록 했다.

기업이 자본조달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도 마련했다.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단독으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 수권자본제도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차등의결권과 양도제한주식 등 종류주식 발행을 허용한 점도 큰 변화다. 의결권 있는 주식을 복수로 발행할 수 있게되면서 혁신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주요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사원 동의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주식보유 비율에 따르지 않고 감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또한 기업의 자금조달 편의성을 높이는 조치다.

국유기업 및 빅테크, 공산당 통제 강화

국가가 출자한 국유기업과 빅테크 등 대기업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조치도 이번 회사법 개정안에 반영됐다. 특히 국유기업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 ‘당의 영도적 역할 강화한다’는 내용을 개정 회사법에 포함시켰다. 이는 국가가 단독 소유한 회사 뿐만 아니라 경영권을 보유한 국유 기업에 전반에 대한 당의 지배력 강화를 의미한다. 앞으로 국유기업의 역할이 필요할 경우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도 주목된다. 특히 실질적 지배자(한국의 동일인)가 경영진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로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경우에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했다. 알리바바의 마윈, 텐센트의 마화텅 등 기업 총수들에게 부담스러운 법 체계 개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