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넘어 '천상계' 음악 들려준 지메르만의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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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가장 까칠한 피아니스트'.
폴란드의 거장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7)에게 붙는 두 가지 수식어다. 이에 걸맞게 지메르만은 관객들에게 엄격한 관람 수칙을 내세우는 연주자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심지어 커튼콜에서 조차 녹음이나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연주에 본인 소유의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고, 피아노 제작에도 전문적 지식을 보유할만큼 악기에 까다롭기도 하다. 이런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연주에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함이란다. 그러니 관객들은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치 않는 '예민의 끝판왕'인 그가 들려줄 음악은 얼마나 섬세하고 완벽할지.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지메르만의 내한 공연은 '완벽을 넘어선 경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 연주였다. 1부에서 쇼팽, 2부에서는 드뷔시와 시마노프스키 작품을 들려준 그는 완벽함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음악으로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첫 곡은 쇼팽의 녹턴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9의 제2번. 이 곡을 포함해 4개의 녹턴을 연달아 연주했다. 그의 손가락은 음과 음 사이 긴장감, 쉼표의 공백을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이 매끈하게 컨트롤했다. 타이밍뿐 아니라 음색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음색이었지만 그 안에는 타건의 속도, 깊이, 각도 등 모든 요소가 철처하게 계산된 공학적 치밀함이 담겨 있었다. 1부의 하이라이트는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의 3악장이었다. '장송행진곡'인 3악장은 화성이 돋보이는 부분과 선율적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그는 한음 한음 쌓아올린 화음으로 최적의 균형을 선보였고,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루바토(템포를 일정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연주)를 최소화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흥분한듯한 건 1악장이었지만, 이 부분에는 작곡가가 '아지타토'(흥분조로)라고 적어놨다는 것.
지메르만은 18세의 나이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쇼팽 음반으로 명성을 얻은 명실상부 '원조 쇼팽 스페셜리스트'다. 그런 이유로 1부에 비해 2부는 덜 특별할 것이라 생각한 관객들에게 한 방 먹이듯, 쇼팽보다 더 뛰어난 드뷔시를 들려줬다. 드뷔시의 '판화'는 작곡가가 미얀마, 그라나다 등 동방 국가들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으로 동양적인 멜로디와 이국적인 리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드뷔시를 연주하며 본인이 원하는 음색을 더욱 다채롭게 구현하는 듯 했다. 주로 곡의 끄트머리에 음을 누른 상태로 지속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런 부분 마다 그는 마치 지휘하듯 손으로 타이밍과 잔향을 조율했다. 흐물흐물 하게 퍼지는 액체같다가 고음 영역에서는 반짝거리는 소리로 돌변하며 귀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건반 위 영역을 넘어 콘서트홀 전체의 소리를 컨트롤 하는 '음향공학자'에 가까워 보였다.카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테마에 의한 변주곡'은 소박하고 서정적인 테마로 시작해 열 개의 변주로 구성된 곡이다. 국내에서는 듣기 어려웠던 색다른 레퍼토리로 신선함까지 선사하며 90분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격렬하게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앙코르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두 곡은 정확한 곡목을 공지하지 않았다. "정해진 답을 주기보다 각자 다르게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0.001초의 잔향까지 원하는 소리로 출력해내는 지메르만 다운 생각이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폴란드의 거장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7)에게 붙는 두 가지 수식어다. 이에 걸맞게 지메르만은 관객들에게 엄격한 관람 수칙을 내세우는 연주자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심지어 커튼콜에서 조차 녹음이나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연주에 본인 소유의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고, 피아노 제작에도 전문적 지식을 보유할만큼 악기에 까다롭기도 하다. 이런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연주에 조금도 방해받지 않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함이란다. 그러니 관객들은 기대할 수 밖에 없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치 않는 '예민의 끝판왕'인 그가 들려줄 음악은 얼마나 섬세하고 완벽할지.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지메르만의 내한 공연은 '완벽을 넘어선 경지'가 있다는 걸 보여준 연주였다. 1부에서 쇼팽, 2부에서는 드뷔시와 시마노프스키 작품을 들려준 그는 완벽함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음악으로 관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첫 곡은 쇼팽의 녹턴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9의 제2번. 이 곡을 포함해 4개의 녹턴을 연달아 연주했다. 그의 손가락은 음과 음 사이 긴장감, 쉼표의 공백을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이 매끈하게 컨트롤했다. 타이밍뿐 아니라 음색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따뜻한 음색이었지만 그 안에는 타건의 속도, 깊이, 각도 등 모든 요소가 철처하게 계산된 공학적 치밀함이 담겨 있었다. 1부의 하이라이트는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의 3악장이었다. '장송행진곡'인 3악장은 화성이 돋보이는 부분과 선율적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그는 한음 한음 쌓아올린 화음으로 최적의 균형을 선보였고,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루바토(템포를 일정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연주)를 최소화하며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흥분한듯한 건 1악장이었지만, 이 부분에는 작곡가가 '아지타토'(흥분조로)라고 적어놨다는 것.
지메르만은 18세의 나이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쇼팽 음반으로 명성을 얻은 명실상부 '원조 쇼팽 스페셜리스트'다. 그런 이유로 1부에 비해 2부는 덜 특별할 것이라 생각한 관객들에게 한 방 먹이듯, 쇼팽보다 더 뛰어난 드뷔시를 들려줬다. 드뷔시의 '판화'는 작곡가가 미얀마, 그라나다 등 동방 국가들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으로 동양적인 멜로디와 이국적인 리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드뷔시를 연주하며 본인이 원하는 음색을 더욱 다채롭게 구현하는 듯 했다. 주로 곡의 끄트머리에 음을 누른 상태로 지속하는 부분이 등장하는데, 이런 부분 마다 그는 마치 지휘하듯 손으로 타이밍과 잔향을 조율했다. 흐물흐물 하게 퍼지는 액체같다가 고음 영역에서는 반짝거리는 소리로 돌변하며 귀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건반 위 영역을 넘어 콘서트홀 전체의 소리를 컨트롤 하는 '음향공학자'에 가까워 보였다.카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테마에 의한 변주곡'은 소박하고 서정적인 테마로 시작해 열 개의 변주로 구성된 곡이다. 국내에서는 듣기 어려웠던 색다른 레퍼토리로 신선함까지 선사하며 90분의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격렬하게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앙코르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두 곡은 정확한 곡목을 공지하지 않았다. "정해진 답을 주기보다 각자 다르게 듣고 생각하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0.001초의 잔향까지 원하는 소리로 출력해내는 지메르만 다운 생각이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