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스 시작점인 함구미에서 30∼40분 걸으면 비렁길의 첫 번째 비경인 미역널방을 만난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로 운반해 널었던 곳이다.
미역널방의 해발 고도는 약 90m에 이른다.
억척스러웠던 섬살이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렁길은 오래전에 주민들이 땔감을 찾아 다니던 길을 정비한 탐방로이다.
새들이 다니던 길이었습니다/바람도 숨차던 길이었습니다/…아슬한 그 비렁에도 사람들이 다니던 길은 있었습니다/발 디딜 곳 없는 바위틈에 붙어 서서/가난을 낚아 올리던 길이었습니다.
길 가 나무 푯말에 새겨진 시 '금오도 비렁길'의 구절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전설이 얽힌 송광사 터, 섬의 고유한 장례 풍습을 엿보게 하는 초분, 신선대 등이 1코스의 볼거리였다.
전설에 따르면 보조국사는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새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순천 송광사, 고흥군 송광암, 금오도에 앉았다고 한다.
이른바 '삼송광'이다.
고려 명종(1195년) 때 지눌이 남면 금오도에 절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 절터가 송광사 옛터로 추정된다.
초분은 초가 형태의 임시 무덤이다.
초분에 시신을 안치했다가 2∼3년 후 뼈를 깨끗이 씻어 본 무덤에 묻었다.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기원이 서린 토속 장례법이다.
2코스 시작점인 두포마을은 처음 사람이 들어와서 살았던 곳이라는 뜻의 '초포' '첫개'라고도 불린다.
3코스는 기이한 모양의 암석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져 비렁길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풍광을 보여준다.
길은 경사가 급해 등산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갈바람통 전망대, 매봉 전망대, 비렁다리 풍광이 인상적이다.
걷기 애호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길이다.
4코스는 거리가 제일 짧아 등산을 부담스러워하는 탐방객이 많이 찾는다.
여행자를 매료할 긴 출렁다리가 건설되고 있었다.
5코스 끝인 장지 마을에서는 그림 같은 안도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섬의 형상이 날개를 펼친 기러기 모양인 안도는 금오도와 안도 대교로 연결돼 있다.
수산업이 발달한 여수에서 어업 전진 기지 역할을 했던 안도에는 천혜의 낚시 항, 어촌 체험 마을, 해송과 동백이 군락을 이루는 동고지 마을, 도보 여행로인 기러기 길 등이 유명하다.
금오도에는 다양한 종의 새들이 서식하는 것 같았다.
무심한 듯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이 귀를 즐겁게 했다.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건만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온화했다.
비렁길의 관광 및 탐방 성수기는 상당히 길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단풍이 아름다운 11월까지 이어진다.
그런 통념을 깨도 좋을 만큼 겨울에도 비렁길은 걷기에 쾌적했다.
여수 신기항에서 떠오르는 해 속으로 빨려들 듯 배를 타고 금오도로 향했다.
장지마을에서 여정을 마쳤을 때 태양은 바닷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빨갛게 이글거리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차곡차곡 쌓인 감동들은 어둠을 뒤로 하고 신기항으로 되돌아 나올 때 가슴 뻐근하게 하는 뿌듯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 일레븐 브릿지와 금오도
금오도는 2010년 비렁길이 조성되기 전에도 등산과 낚시로 유명한 섬이었다.
함구미에서 매봉산을 지나 옥녀봉(261m)을 거쳐 동쪽 해안인 검바위로 내려오는 등산로에 서면 능선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금오도는 제주도에서 올라오는 난류 덕에 어종이 풍부하다.
국내 최대의 감성돔 산란처이며 참돔, 돌돔, 붉은돔, 멸치, 장어, 삼치 등이 많이 잡힌다.
우리가 탄 배에도 낚시꾼이 많았다.
중풍을 예방한다고 해서 방풍나물로 불리는 갯기름나물의 전국 생산량 중 70%가량이 금오도에서 재배된다.
해풍과 풍부한 햇살을 받고 자란 금오도 방풍나물은 향이 진하고 맛이 뛰어나다.
방풍나물은 봄나물로 알려져 겨울에는 판로를 유지하기 어렵다.
수매자를 찾지 못해 밭에 방치되고 있는 방풍나물이 안타까웠다.
여수에는 유인도 48개, 무인도 317개 등 365개의 섬이 산재한다.
섬들이 현대식 다리로 연결되고 있었다.
일레븐 브릿지(11개 다리) 사업은 전남 고흥 영남면에서부터 여수 돌산읍까지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연결한다.
고흥 영남면과 여수 적금도를 잇는 팔영대교,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적금대교,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낭도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둔병대교, 조발도와 화양면을 잇는 화양조발대교, 화양면과 백야도를 잇는 백야대교, 화태도와 여수 돌산읍을 잇는 화태대교 등 7개 다리는 이미 건설돼 있다.
백야도와 제도를 잇는 화정대교(가칭), 제도와 개도를 잇는 제도대교(가칭), 개도와 월호도를 잇는 개도대교(가칭), 월호도와 화태도를 잇는 월호대교(가칭)는 모두 2028년까지 완공될 예정이다.
이 다리들이 연결할 지역은 고흥 영남면을 제외하면 전부 여수시에 속하는 육지이거나 섬들이다.
11개 다리가 완공되면 다리 박물관을 떠올리는 다양한 교량과 보석 같은 섬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해양관광 벨트가 구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월호도와 금오도를 잇는 연도교도 추진되고 있다.
연도교가 건설되면 금오도는 육지와 연결된다.
경상남도 남해와 여수를 잇는 해저터널도 건설된다.
비렁길이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