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AI가 아니더라도…인간은 계속 지배당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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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오버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을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특이점을 넘어서면 사회·경제적으로 한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출간된 <핸드오버>는 이 같은 기술적 특이점이 목전에 왔다고 주장한다. 핸드오버(The Handover)는 ‘권력·책임의 이양’이다. 인간이 인공지능(AI)에 권력을 넘겨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미래학자나 테크 기업 관계자가 아니라 정치학자가 AI 사회를 내다본 책이다.
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 와이즈베리
372쪽│1만9800원
책을 쓴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우리는 이미 300년 동안 AI와 살아왔다”고 말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결정하지만, 인간은 아닌 ‘인공 대리인’들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이유에서다. 17세기 등장한 근대국가와 18~19세기 현대적 기업이 여기 해당한다.저자는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주인 대리인 이론, 권력, 법인격 등 정치적 개념을 통해 국가와 기업이 형성됐던 과정을 설명하고, 이와 ‘닮은꼴’ AI가 가져올 미래 모습을 전망한다. 책은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개념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홉스는 국가를 개개인이 모인 집합체인 ‘거대한 인공 인간’으로 묘사했다. 개인은 국가에 자기 권한 일부를 넘긴 대신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과 실행을 더 큰 집단인 기업이 맡으며 효율적인 자원분배를 가져왔다. 국가와 기업에 이은 ‘두 번째 특이점’이 AI에 의한 변화다.
런시먼에 따르면 국가와 기업, AI는 ‘기계적인 속성’을 공유한다. 인간보다는 이들끼리의 결합이 용이하다는 소리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공 대리인들의 작동 방식은 사회의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다.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 AI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소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저자는 미래에 관한 구체적인 제언에 대해서는 답변을 미룬다.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나열할 뿐이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이 책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