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한 벌 만드는데 8000L의 물이 필요하다는 거 아셨나요 [책마을]

물욕의 세계
누누 칼러 지음
마정현 옮김
현암사
328쪽 / 1만8800원
내 옷장에는 청바지가 몇 개나 있을까? 패션잡지 ‘인스타일’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평균 여덟 벌의 청바지를 소유하고 있다. 쇼핑과 소비는 충족감과 쾌감을 선사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에는 그렇지 않다. 단 한 벌의 청바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8000L다.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웠을 때 약 150L가 든다고 한다면, 53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소비자대변인으로 일한 오스트리아 작가 누누 칼러는 <물욕의 세계>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비자이자 환경운동가로서의 복잡한 속내를 이야기했다.
저자는 한때 ‘쇼핑광’이자 ‘맥시멀리스트’였다. 어느 날 그는 벼룩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작은 탁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바로 구입하지 못했다. 집에 또 다른 작은 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탁자를 사는 데는 분명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저자는 고민의 늪에 빠지고 만다. ‘나는 정말 이 탁자가 필요할까? 가구는 이미 충분한데.’

저자는 물욕과 건강한 소비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삶을 지배하는 소비에 대해 소비심리학, 사회학, 환경론적으로 분석했다.

물욕이 넘쳐나는 시대의 원인으로는 패스트 패션과 SNS를 꼽았다. 오늘날 패스트 패션은 저렴하고 많은 옷을 생산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혔다. 고민하는 사이 품절되면 다시 입고되지 않아 ‘지금 사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불안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준다. 사람들의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버튼을 누르는 셈이다.SNS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대인은 짧은 시간에 다양한 사건을 많이 보고 관찰할 수 있다. 나만 제외하고 모두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아 내적 불안도 느낀다. 이렇게 뭔가를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내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물건을 사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멋진 삶을 구매한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심리적인 압박감을 통한 과도한 소비는 ‘끔찍한’ 환경 재난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그린피스에서 6년간 일하면서 저자는 “우리의 소비가 초래한 환경 참사를 직접 목격했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거나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일이 아니라면, 외면하거나 금방 잊어버리는 ‘인지부조화’를 예로 들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던 돼지가 트럭에서 탈출했다는 뉴스에 안타까워하지만 마트에 가선 할인하는 돼지고기를 구입한다. 플라스틱 섬이 태평양 한가운데 생겼다는 소식에 놀라워하지만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한다. 유럽에서 더 이상 팔기 어려워진 옷을 묶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보내면 그곳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중고시장에 내놓는다. 그 결과 번창하던 동아프리카의 섬유산업은 완전히 쇠퇴했다. 엄청난 양의 기부된 옷들과 경쟁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책은 소비와 연결돼 생태계와 환경이 망가지는 사례를 보여주며 국가 간 빈부격차, 전쟁 난민 등 세계적인 문제로 내용을 확장해 나간다. 단순히 갖고 싶어서 구매하는 행위 하나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준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저자는 “소비는 항상 존재하고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좋은 소비가 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며 “신분 증명의 근거가 아니라 무너진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도구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우리 앞에도 놓인 소비와 환경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금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