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선거 앞두고 '국채 찍어내기'…"통제 범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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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사상 최대올해 선거를 앞둔 주요국들이 선심성 공약 이행을 위한 ‘국채 찍어내기’에 돌입하면서 중앙정부의 부채 규모가 사상 최대치로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국의 재정 적자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으면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美 등 주요국서 역대급 부채 발행 예고"
美, 올해 국채 5000조 무더기 발행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현지시간) 국제금융협회(IIF) 자료를 인용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였던 2021년을 제외하면 올해 역대 최대 규모를 찍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공격적인 국채 발행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사모펀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에 따르면 올해 미 재무부는 약 4조달러(약 5260조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3조달러를 찍어냈던 전년 대비 30% 넘게 많은 수준이다. 신규 발행량에서 미 중앙은행(Fed)의 매입량과 기존 부채 상환액 등을 뺀 순발행액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1조6000억달러(약 2106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올해 영국 정부는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순발행액은 지난 10년 평균의 3배가량에 달할 전망이다.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으로 범위를 넓혀 보면 국채 순발행량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6400억유로(약 921조원)로 예측된다. 경제 규모 상위 10개국의 연 발행량은 1조2000억유로(약 1727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캐나다에선 올해와 내년 국채 순발행량이 팬데믹 때를 넘어설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신흥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신흥국들의 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는 지난해 68.2%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헝가리,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은 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평균 국채 금리가 낮아진 상황을 활용해 달러화나 유로화로 표시된 채권을 빠르게 찍어내고 있다.
미 자산운용사 야누스헨더슨의 글로벌 채권 부문 책임자인 짐 시엘린스키는 “(각국 정부의) 적자는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통제할 수 있는 매커니즘 자체가 없다”면서 “향후 6~12개월 사이 국제 금융 시장에 심각한 우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선거 앞둔 나라서 포퓰리즘 ‘남발’
주요국들의 나랏빚이 역사적인 속도로 늘고 있는 건 선거 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오는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에선 정파를 막론하고 재정 지출을 늘리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성 공약이 남발되는 분위기다.공화당 측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시 재임 기간인 도입했던 ‘감세와 일자리 법’(TCJA)에 규정된 개인 소득세 감세를 영구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5월 미 의회예산처(CBO)는 감세 조치가 연장될 경우 2033년까지 재정적자가 3조500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던 바 있다.
미 투자회사 프랭클린템플턴의 유럽 채권 담당자인 데이비드 잰은 “두 선두 주자(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는 정부지출 규모를 계속해서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에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4%에도 못 미치던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향후 4년간 6.5~8% 수준에서 유지될 전망이다.재정 준칙이 무시된 채 국채 발행이 남발되면 급격히 불어난 이자 부담이 주요국 경제를 짓누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IIF는 “올해 선거가 예정된 미국, 인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포퓰리즘성 ‘돈풀기’ 정책이 잇따르면서 정부지출이 급증세를 띠고 있다”며 “이미 역대급 수준으로 커진 각국 이자 부담이 한층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국 금리 인상으로 차입 비용이 10% 이상 오르면서 각국 정부의 이자 부담액만 2조달러(약 263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