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일까, 예술일까…'낙서 테러' 모티브 됐다는 그들

미스치프 성역은 없다

미국 뉴욕 기반의 작가 30여명
파격적 형식 내세워 작품 활동

의료비 비싸다는 점 비꼬기 위해
청구서를 초대형 그림으로 그려
명품 가방으로 슬리퍼 만들기도

경복궁 낙서범 "전시 보고 결심"
대림미술관서 3월 말까지 전시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티스트그룹 미스치프의 ‘성역은 없다’ 전시 전경. 대림미술관 제공
“미스치프의 슬로건 ‘성역은 없다’처럼 ‘짓궂은 장난’을 좀 치고 싶었다. 나는 예술을 한 것뿐이다.”

지난해 12월 17일 경복궁 영추문 담벼락에 모방 범죄로 낙서 테러를 하고 도망친 설모씨. 그가 구속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다. 아티스트그룹 ‘미스치프’마냥 예술을 했다는 것.설씨는 담장에 낙서하기 한 달 전인 11월 19일, 미스치프가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미스치프: 성역은 없다(MSCHF:NOTHING IS SACRED)’ 전시를 찾았다가 범죄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 웃지 못할 사건으로 ‘미스치프는 누구인가’에 대중의 관심이 쏟아졌다. 그가 구속된 지난달 17일 포털사이트에서 ‘미스치프’ 검색어 트래픽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미스치프가 도대체 누구길래?

‘온라인계의 뱅크시’로 불리는 미스치프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창작 집단이다. 2019년 가브리엘 웨일리, 케빈 와이즈너, 루카스 벤텔, 스티븐 테트로의 손에서 시작됐다. 규모를 키워 지금은 30여 명의 작가가 소속돼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들은 ‘장난짓’이라는 그룹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격변의 시대 속에서 세상과 거대 자본을 향해 장난스러운 예술로 ‘짱돌’을 던지며 세계 예술, 디자인, 패션계에서 주목받았다. 자본이 전부가 된 현대사회, 그 안에서 노예처럼 굴러가는 인간, 그리고 그들이 소비하는 브랜드와 상품을 비꼬는 작품들을 내놨다.

미스치프는 그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들은 화가, 현대미술 작가, 조각가 등 어떤 ‘고유명사’로 정의 내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래서 일정한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대신 계속 예술의 형태를 바꿔가는 작업을 했다. 결과물을 내놓는 방식도 특별했다. 직접 홈페이지를 열고 2주마다 작품을 단어 그대로 떨어뜨린다는 ‘드롭’ 방식으로 대중에게 나타났다. 이들은 내놓은 작품에 모두 ‘한정판’ 딱지를 붙여 판매했다.

마니아층에 이름을 알린 미스치프는 본격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향해 위트 있는 도발을 날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바로 미국 의료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은 ‘의료비 청구서 회화’(Medical Bill Art)를 내놓으면서다.1억원에 달하는 한 환자의 의료비 청구서를 본 미스치프는 정작 환자를 돕지 못하는 미국 의료보험을 풍자하기 위해 실제 청구서를 그대로 세 장의 대형 유화로 제작했다. 이후 이 유화 작품을 의료비 청구액과 같은 금액인 1억원에 판매했고, 청구서 주인의 빚을 갚아주는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논란의 아티스트 서울에 오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장난질’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스스로 논란을 만드는 작품을 계속 내놓는 미스치프. 그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 100여 점을 들고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 ‘경복궁 낙서범’도 찾았던 바로 그 전시다. 미스치프가 세계 처음으로 선보이는 미술관 전시라는 점에서 개막부터 주목받았다. 그들이 만든 게임, 오브제, 회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품이 나왔다.이들을 스타 아티스트로 만들어 놓은 유명 작품을 이번 전시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운동화 두 켤레다. 나이키 운동화 ‘에어맥스 97’의 밑창을 멋대로 뜯어 성수를 넣고 제작한 ‘예수 신발’과 피를 넣어 만든 ‘사탄 신발’이 그것이다. 별것 아닌 듯한 이 작품은 나이키가 법적 분쟁을 걸면서 패션계 화제의 중심이 됐다. 하나당 1000만원이 넘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죽을 모두 해체해 슬리퍼로 만든 ‘버킨스탁’(사진)도 전시에 나왔다.

기존에 알던 ‘판매 공식’을 뒤집어 놓은 작품들도 걸렸다. 미스치프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데미안 허스트의 페인팅 그림을 구매한 뒤 작품에 찍힌 88개의 점을 사정없이 가위로 오려냈다. 각각의 88점을 다시 되팔아 일곱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리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그 88개의 조각을 모두 서울 전시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