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리스크' 트럼프, 면책특권 주장하며 법정 무대로 선거운동(종합)

공화 첫 경선 앞두고 '대선 뒤집기 시도' 면책 여부 변론에 직접 참석
트럼프 "내가 없으면 바이든도 면책없다"…정치기소 피해자 부각·보복도 시사
대통령 재임 중에 실시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자신의 형사상 면책특권 문제에 대한 법원 변론에 직접 출석했다. 아이오와주에서 시작되는 공화당의 첫 대선후보 경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자신에 대한 수사·기소를 바이든 정부의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정을 무대로 한 선거운동에 본격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워싱턴DC 항소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 출석해 구두변론에 참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출석한 것은 지난해 8월 법정에서 유죄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인부절차 참석에 이어 5개월여만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지난 2021년 1월 6일 의회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인 1·6 사태를 수사해온 연방 특검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선거 진행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사태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 면책 특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혐의를 기각해줄 것을 연방 법원에 요청했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법원의 이번 심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기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존 사우어 변호사는 이날 구두변론에서 "대통령의 공식 행위에 대한 기소를 승인하는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와 관련, "의회에 허위 정보를 제공해 이라크와 전쟁을 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공무집행 방해죄로 기소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버락 오마다 전 대통령이 재임 시 해외의 미국인을 겨냥해 드론 공격을 승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CNN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미리 제출한 입장문에서 "전직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뒤집고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범죄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경우 형사 기소에 대한 면책은 위험하다"면서 "이는 대통령직 자체와 민주적 통치 체제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특검팀은 이날 변론에서 "대통령이 법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상 면책 특권이 인정되면 그는 대선 뒤집기 시도 혐의 등에서 벗어나면서 대선을 앞둔 사법 리스크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에서도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며 전날 조지아주 법원에도 형사상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다만 워싱턴 DC의 항소법원이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지는 불투명하다.

항소법원의 캐런 핸더슨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 변론에 대해 "법을 충실히 집행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가 형법 위반을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항소법원 판사 3명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특권 주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판사는 면책특권을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측 변호인에게 '대통령이 특공대에게 정적 암살을 명령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 특권 문제는 연방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이렇게 되면 3월 초 시작 예정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 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재판에서 '지연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상태다.

나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날 재판 참석이 당내 경선 등에서 지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많다.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바이든 정부의 '정적 탄압', '정치 기소 피해자'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구두변론에 참석할 의무가 없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자리했다.

그는 전날 자신의 참석 계획을 알리면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바이든 정부의 정책 등을 비판하면서 "나한테 면책특권이 없으면 부패한 조 바이든도 면책특권을 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 뒤 워싱턴DC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옛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정부의 법무부가 정적을 기소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면서 "바이든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지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기소)이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차 국경문제,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의 거론하면서 "바이든은 그런 것으로 기소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면책특권이 없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국민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가 유고브와 지난 3~5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재임 중 한 일에 대한 형사적인 면책 특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 이념 성향별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면책 특권 문제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는 69%, 민주당은 14%, 무당층은 32%가 찬성해 차이를 보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