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젠 없네"…일본 포복절도한 노인들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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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많으셔서요'
그게 병명이냐
시골 의사여
몸이 불편해 찾은 병원. 노인의 증상을 듣더니 의사는 "연세가 많으셔서 그렇다"고 답한다. 여든세 살의 마쓰우라 히로시 씨는 집에 돌아와 그런 의사를 향해 "늙은 게 무슨 병명이라도 되냐"고 되묻는 글을 혼자서 써본다. 고작 세 줄의 시인데 웃음과 공감, 애잔함까지 자아낸다.최근 국내 출간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이 같은 일본 노인들의 센류(川柳)를 모은 책이다. 센류는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를 뜻한다. 풍자나 익살을 담아내는 게 특징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본 노인들의 센류 모음집이 출간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이 책은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2001년부터 매해 개최해온 '실버 센류' 공모전 수상작 중 88수를 엄선했다. 공모전 수상작들은 일본에서 시리즈로 출간됐는데, 시리즈 누적 판매량이 90만부에 달한다."연상이/내 취향인데/이젠 없어"(야마다 요우·92세) "이봐, 할멈/입고 있는 팬티/내 것일세"(시무타 겐지·60세) "종이랑 펜/찾는 사이에/쓸 말 까먹네"(야마모토 류소·73세) 등 노인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녹아든 센류를 읽다보면 웃음이 터져나온다.
책은 '먼저 온 미래' 초고령사회 일본의 풍경을 보여준다. "일어나긴 했는데/잘 때까지 딱히/할 일이 없다"(요시무라 아키히로·73세)거나 "환갑 맞이한/아이돌을 보고/늙음을 깨닫는다"(네헤이 히로요시·54세)는 모습이 그렇다. 여기에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덧붙여졌다.이 책을 기획·편집한 서선행 포레스트북스 편집자는 "몇년 전 일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기다렸던 책"이라며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 속 철학과 관조를 통해 나이 들어가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전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