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엔 '저강도 전환' 공언 이스라엘, 국내선 "끝장 볼것" 딴말

안팎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하는 '이중 메시지' 구사
"단기적으론 국제여론 수용 이미지 구축·장기적으론 전쟁목표 달성 추진"
이스라엘이 민간인 피해를 우려한 국제사회의 압박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 강도를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나 국내에서는 전쟁의 끝을 보겠다고 강조하며 '이중 수사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새해 들어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일부 병력을 철수하는 등 저강도 장기전으로 전쟁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확전 방지를 위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문을 앞둔 지난 8일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NYT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일부 병력을 철수하고 공습 횟수를 줄이는 등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고강도 작전 대신 다양한 형태의 특수작전으로의 전략 변화 방침을 밝혔다. 이 무렵 미 당국자들도 지난달 한때 5만 명에 달한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병력이 최근 절반 이하로 줄었으며 이달 말까지 전쟁 국면 전환이 완료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당국자들의 언질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날은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법무장관이 영어로 낸 성명에서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 피해를 요구하는 어떤 발언도 이스라엘의 정책에 위배되며 형사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일에는 가자지구로의 구호물자 전달을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을 보여주는 취지의 언론 대상 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국내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은 대외적 메시지와는 전혀 달랐다.

하가리 대변인은 NYT와 인터뷰 당일 밤 히브리어로 한 브리핑에서 해당 인터뷰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하마스 해체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는지 여부에 대한 발언은 이스라엘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갈란트 장관이 비공개 회의에서 "전쟁이 수 개월 더 지속될 것이고, 이를 위해 국제적 운신의 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이 같은 '이중 수사법'이 단기적으로는 국제 여론을 달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하마스 소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라는 국내 여론에 부응하기 위한 '줄타기'라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중 시위대가 "가자지구에서 휴전을 요구하라"고 항의하는 등 이번 전쟁 관련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오는 11일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 혐의에 대한 심리가 열릴 예정으로,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의 전쟁 명분과 정당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정부가 국제사회의 압박에 굴복해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군사평론가 요아브 리모르는 우파 성향 일간 이스라엘 하욤에 기고한 글에서 "정부가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하고는 국제사회와 미국을 상대로는 전쟁이 저강도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하면서 모순된 약속에 스스로를 가뒀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정치평론가 알론 핀카스는 "이스라엘은 '우리가 모든 비판을 받아들였고 여론을 취합하고 수용했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며 "한편으로 이스라엘 주류는 가자지구에서 여전히 하마스가 활동 중인 와중에 전쟁의 고삐를 푸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저강도 국면으로의 전환이라는 대외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중동 지역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 정부는 레바논 국경에서의 긴장 고조를 자제하라는 블링컨 장관의 촉구를 거부하고, 필요 시 레바논에서 군사 작전을 벌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헤르지 하렐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우리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만들 것"이라며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