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지는 잊어" 하나의 선율, 7개의 장단으로 판소리 만드는 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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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이자람의 소리-작곡이랑 작창이랑 뭐가 달라요? (1)필자의 여러 정체성 중 소리꾼 다음으로 큰 정체성이 작창가이다.* 2000년대 들어 판소리와 관련된 창작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역할이 작창가이며, 작품의 작, 연출과 어깨를 겨루는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창극 <정년이> 기자간담회에서 어느 기자분이 간담회 이후 개인적으로 다가와 “그런데 작창이랑 작곡이랑 뭐가 달라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은 굉장히 시원한 물음이었다. 아마도 판소리와 관련이 없는 모두, 심지어 판소리 관련 종사자조차 그 명쾌한 답이 궁금할 질문이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쉽게 풀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작창은 판소리 장르 안에서의 곡 쓰기를 일컫는다.(이번 회 칼럼에서는 현재 창극단을 비롯한 수많은 작창에서 시도되는 음악장르 영역 확장에 대한 언급이나 개념 정의를 제외하고 논의를 진행하겠다.) 작창과 작곡은 그 개념이 동일하다. 둘 다 곡 쓰는 일을 칭한다. 작곡은 좀 더 넓게 쓰이는, 모두가 아는 개념이며 작창은 판소리라는 장르 안에서만 쓰이는 개념이다. 이를 더 파고들기 전에, 먼저 음악이라는 단어에 쓰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겠다.
당신은 음악, 이라고 하면 어떤 장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서양의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 BTS나 뉴진스의 케이팝? 학창 시절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는 국민 모두가 아는 곡들? 동요, 가곡, 재즈, 록? 혹시 이 와중에 한국의 전통 음악이 떠오르기도 하는가?
사실 음악은 그 모두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대중음악도, 서양의 클래식도, 국악도 모두 음악이라는 포괄적 개념 아래 세분화하고 있는 장르들이다. 그러나 실상은 음악이라는 개념 범주에서 국악이 늘 제외된다. 학부시절, 내 입에서는 자연스레 전통서양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에게 ‘으어 양악 역사 너무 어려워 너네 양악과는 이걸 달달 외우는 거야?’ 라고 했다가 그들이 양악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굉장히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음악대학이 있고 그 안에 국악과가 있으니 국악과를 제외한 학과는 양악과 라는 생각은 내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논리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음악’이라는 말의 지분을 대부분 서양음악에게 주고 있었으며 국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음악과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임을 그제야 깨달았던 일화다. 마찬가지로, 작곡이라는 개념은 음악이 서양의 오선보 위에만 쓰이는 경우의 곡을 쓰는 행위로 그 개념이 오랜 시간 정착되었다. 왜? 음악이 이미 서양의 음악이라는 생각 위에서, 음악을 쓰는 행위인 작곡 역시 서양음악의 창작에 주로 쓰였기 때문에 각 음악대학의 ‘작곡과’에선 서양의 전통적인 곡 쓰기를 기초로 한 커리큘럼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국악에는 작곡이 없을까? 아니, 국악과 내에 국악작곡 전공이 존재한다. 이들은 국악의 음악적 어법을 근간으로 한 작곡법을 배우며, 더불어 서양의 작곡법도 배운다.*** 그렇다. 이 역시 ‘서양 작곡’과 ‘국악 작곡’으로 분류해야 맞을 것인데 ‘작곡’이라는 이름의 지분을 서양 음악이 많이 갖고 있어 서양 작곡은 작곡으로, 국악 작곡은 국악 작곡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잠시 노파심에 짚고 가자면, 이 글에서 음악 안에서의 형평성 있는, 혹은 올바른 명칭 사용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자가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창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개념의 분류에 있어 모순적인 부분들이 발견되어 한번 이 덜 익은 사유를 나누어 보고자 쓴 것이다. 자, 그런데 왜 작창이라는 별도의 단어가 태어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서양 작곡 혹은 국악 작곡 전공자들은 작창을 하기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음악 도구는 오로지 하나의 선율과 7개의 장단 뿐이기 때문에 서양 작곡에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화성법이나 대위법과는 거리가 멀고** 국악 작곡에서 배우는 여러 선법과도 거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음악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은 판소리를 오랜 시간 숙련하여 그 어법이 매우 잘 체화되어 있는 소리꾼들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1900년대 초반 전통적으로 1인 연행 형태였던 판소리가 청나라의 연극, 일본식 극장 문화를 만나며 창극으로 분화된다. 이때 발족한 조선성악연구회를 비롯한 수많은 판소리 단체들에서는 분창 형식에 따른 구성을 손볼 편곡자의 역할이 필요했었고, 이 시기부터 작/편곡 능력을 갖춘 소리꾼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창극이라는 명칭은 1934년 창립된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배비장전>을 무대에 올리면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작창이라는 말이 쓰였을 수 있었을 테지만, 기록상 작창이라는 말을 갖추어 쓰기 시작한 것은 1962년 국립창극단 설립 이후, 그곳에서 작곡하는 이들을 작창가라 부르면서부터이다. 그렇게 ‘작창’ 혹은 ‘작창가’라는 말이 국립창극단의 공연들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1900년대 중후반이라면,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 명칭이 익숙해지게 되고 그와 더불어 그 개념이 정립되기 위한 약간의 몸살을 겪고 있는 시기가 놀랍게도 2000년대 초부터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판소리<노인과 바다>,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판소리 단편선_주요섭 : 추물/살인> 이외에도 국립창극단의 여섯 작품(창극 <패왕별희>, <나무, 물고기, 달>, <소녀가>, <흥보씨>, <시>, <정년이>) 에서 그리고 그 외 장르인 뮤지컬<서편제>와 총체극<순신>에서 작창을 했다.
**필자가 서양 작곡의 커리큘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으므로 필자의 대학시절 주워들은 것으로만 적은 문장이다. 오류가 많다면 잘 아는 분의 지적을 부탁드린다.
***국악 작곡 전공자들은 대학에서 서양의 화성/대위법을 심도 있게 배우고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의 분석을 통한 작곡법을 숙련한다. 이들은 성악곡보다 기악곡이나 관현악 곡을 많이 쓰며, 성악곡의 경우 판소리가 아닌 국악 어법을 사용한 노래 곡을 주로 쓴다. (1999년도 서울대학교 국악 작곡과 졸업생의 도움을 받은 주석이니 2000년대 국악 작곡 전공자들은 커리큘럼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또한 궁금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