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도 다 똑같은 사람"…의외의 장소서 소맥에 '러브샷'까지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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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오너家, CES에 총집결"재벌은 뭐 사람 아닌가요? 다 똑같아요."
엄숙한 모습 뒤에…진솔한 얼굴
'재벌 총수는 어떻게 사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기업 관계자들의 답은 한결같다. "그런가요"라며 갸우뚱했던 의구심은 뜬금없는 곳에서 풀렸다.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에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소맥(소주+맥주) 폭탄주도 즐겨 마시는 그들의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지난 10일(현지시간) CES LG전자 전시장을 찾은 구자은 LS그룹 회장. 탄소감축 기술에 관해 설명을 듣던 구 회장은 갑자기 "탄소배출을 하지 않으려면 여기 전시장부터 없애야 하는 데 말이죠"라며 "여기 지으려면 탄소가 많이 배출되잖아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LS그룹은 구 회장과 명노현 부회장부터 일반 사원들까지로 구성된 CES 참관단을 꾸려 현장을 돌았다. 기자들한테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 1'의 대사를 묻기도 했다. "터미네이터 여주인공 사라 코너(배우 린다 해밀턴)가 '폭풍이 온다(There is a storm coming)'고 했는데 알죠?"라고 물었다. 터미네이터를 본 적이 없는 MZ세대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식업체 아워홈 구지은 부회장도 CES를 부지런히 훑고 다녔다.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구 부회장은 기자에게 "푸드테크(푸드+기술) 기업을 보러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주제는 사업에 대한 고민을 거쳐 부친인 아워홈 창립자 고(故) 구자학 회장으로 닿았다. 그는 "아버지는 산업화 시대를 살아갔고, 오너였지만 전문경영인처럼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지난해 열린 'CES 2023'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전무) 등이 취재진과 접촉했다. 당시 CES 부스를 돌아보는 최태원 회장은 '아이스크림 먹방'으로 큰 화제를 불렀다. 당시 그는 부스에서 전시한 아이스크림 한 컵을 다 비웠다. 연신 "맛있다"고 감탄하더니 SK그룹 관계자에게 "우리나라에는 수입 안 하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아이스크림은 미국 푸드테크 기업인 퍼펙트데이가 대체 유단백질로 만들었다. 대체 유단백질은 소에서 추출한 단백질 유전자를 바탕으로 생산한 것으로 우유의 질감과 맛을 낸다. 최 회장의 먹방은 당시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해당 아이스크림에 대한 일반인의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정기선 부회장은 직원들은 물론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오너다. CES 현장에서 열린 기자단 만찬에서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소맥을 마셨고, 팔을 걸고 '러브샷'도 한다. 쭈뼛거리는 기자들한테도 "기사 잘 읽고 있다"며 먼저 말을 건넬 만큼 친화력도 있다. 젊은 오너가 사이에서도 이른바 '인싸'로 통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의 관계가 특히 각별한 편이다.지난해 CES에서 만난 신유열 전무는 185㎝ 키에 노타이 정장 차림이었다. 당시 전시장을 같이 찾은 김교현 전 롯데케미칼 부회장 뒤에 큰 가방을 들고 서 있기에 수행비서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에게 명함을 건네고 여러 번 말을 걸었지만 눈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떴다.
기사를 보면 총수들은 근엄하고 엄숙한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나온다. 평범한 사람과 동떨어진 '성인(聖人)'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이 같은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CES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라스베이거스=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