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혁명의 ‘그림자’… 농부들이 떠나며 함께 사라진 것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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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쌀 나무에서 쌀이 열리는 줄 안다”라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도시 아이들이 논에서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쌀이 나무에서 열린다고 해도 그냥 믿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세계 각지 농업 현장 살펴본 독일 언론인
세계화되고 기업화된 농업의 위험성 경고
“품종 개량·대규모 재배, 지구 병들게 해”
요즘 아이들은 농촌의 현실에 대해 더더욱 알지 못한다. 먹방이 유행하고 요리에 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음식 재료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어 결국 우리 식탁 위에 오르게 되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독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 <농부들의 죽음(Bauernsterben)>은 세계화되고 기업화된 농업이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자급자족과 지역경제 순환, 그리고 지속 가능한 환경의 ‘파수꾼’이자 ‘실핏줄’ 역할을 했던 농부들이 하나둘씩 농촌을 떠나면서, 지금 전 세계 들판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책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순간, 당신은 수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지구 생태계 파괴와 환경 위기의 주범으로 전락한 대규모 농업의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1954년생인 저자 바르톨로메우스 그릴(Bartholomaeus Grill)은 지속 가능한 순환 경제의 전통에 따라 부모님이 운영하는 시골 마을 농장에서 태어나 자랐다. 40여 년 동안 ‘슈피겔’과 ‘디짜이트’ 등 독일 유력 언론의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생활한 그는 농업 현장이 그동안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하는지 지켜봐 왔다. 그는 이 책을 ‘기업농 주도의 파괴적인 농업 환경에 반대하는 호소문’이라고 소개한다.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기업농이 등장하고 난 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농부들이 사라져가고 있고, 조만간 모두 자취를 감출 지로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심각하고 부정적인 파급 효과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농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가장 고귀한 직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농업에도 기업화와 세계화가 진행되고 세계적 기업 주도로 대량의 농산물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이 자리를 잡으면서, 농부들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세계적 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철저히 분리하면서 가격을 올리고 자기들의 잇속만 채우고 있다.
책은 ‘녹색 혁명’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품종 개량과 대규모 재배야말로 지구를 병들게 하는 가장 파괴적인 힘이라고 지적하며, 산업형 농업이 우리 경제, 환경,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파헤친다. 무분별한 농지 개발, 생물 다양성 파괴, 단작에 의한 토양 훼손 등 제한된 생물학적 자원과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지금의 대규모 산업 방식은 순환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과거 전통적인 농업방식으로 생산돼 먹던 음식과 지금 대규모 산업형 농업에 의해 생산돼 먹고 있는 음식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도 밝힌다. “우리가 먹는 음식 때문에 병들고 있다.” 강박적으로 맛에 탐닉하는 요즘 시대에 진지하게 고민해 볼 만한 중요한 질문이 담긴 책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