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비트코인 ETF '금지령'…韓, 크립토 갈라파고스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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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오락가락 규제…증권사·투자자 '분통'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데뷔한 다음 날인 12일 한국 금융권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불가’라는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방침이 전해지면서다. 여기에다 금융당국이 선물 ETF 거래에 대한 지침도 내놓지 않으면서 증권업계와 ‘서학개미’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선진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지 못하고 규제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한국이 ‘크립토 갈라파고스’(암호화폐 고립 시장)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년 전 현물ETF 땐 말 없다가
이제와서 증권사에 "중개 위법"
축포 터진 美 vs 우왕좌왕 韓
그레이스케일, 블랙록, 피델리티 등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의 11일(현지시간) 거래 규모는 총 46억달러(약 6조600억원)에 달했다. 거래 규모가 가장 큰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의 거래량은 23억2618만달러(약 3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첫날 거래량에 대해 “괴물 같은 출발(monster start)”이라고 평가했다.세계 ETF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축포가 터지는 동안 한국에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2021년부터 국내 증권사가 지원해 온 캐나다·독일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와 비트코인 선물 ETF 거래 서비스가 전격 중단된 것이다. 앞서 증권사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 공지를 올렸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전날 국내 증권사가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사실상 ‘금지령’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갑작스러운 위법 시비에 휘말린 증권사들은 고객에게 사전 고지도 없이 거래를 막았다. 현재 현물 ETF 상품은 매도만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상 중개가 가능한 금융상품의 기초자산에 비트코인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 3년 동안 문제 삼지 않다가 이제 와 위법성을 거론하는 당국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시장에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을 점쳐 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협회에서 공문이 아니라 전화로 급하게 통지받았다”며 “고객 수익과 직결돼 있어 가이드라인을 더 확실하게 달라고 협회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법인 가상자산 직접 투자도 불가능
가상자산에 대한 금융당국의 과도한 규제가 새로운 시장이 성장할 가능성의 싹마저 자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및 투자는 물론 금융회사와 법인의 가상자산 직접 투자도 불가능하다.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허용하지 않은 일본조차 법인의 직접 투자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넥슨 일본법인이 2021년 1억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로선 국내 개인과 기관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려면 해외 증권사를 통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운용 자금의 1%(10조원)를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약 300억원의 수수료(블랙록 기준)를 달러로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국민연금은 미국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투자(약 260억원)로 비트코인에 간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조미현/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